송구영신(送舊迎新). 2014년을 마감하고 2015년을 맞이해야하는 시점이다. 국내 한 포털사이트가 공개한 올해 인터넷 인기 검색어 1위는 ‘세월호’다. 대학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했다. 지록위마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부른다는 뜻으로, 남을 속이려고 옳고 그름을 바꾸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우리 사회는 올 한해를 슬픔과 분노, 씁쓸함 속에서 보내야 했다.
농업분야 역시 이보다 나을 게 없다. 더하면 더했지… 연초부터 생산비 아래로 폭락한 농산물가격은 이 시점까지 이어지면서 농업인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고, 농업을 둘러싼 분위기는 엄동설한 한기로 가득하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기금을 포함한 농림축산식품부 소관 예산은 14조 431억 원으로, 정부가 제출한 14조 940억 원보다도 509억 원이나 줄었다. 나라전체 예산에서 농업예산 비중은 약 3.7%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정부가 예산을 편성할 때는 국회 몫, 정치권 몫으로 일부를 떼어 놓는 게 상례다. 이른바 국회 심의과정에서 국회의원이 생색(?)을 내며 각 분야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내년 농업예산은 국회심의과정에서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줄었다. 전에 이런 일이 있었던가? 농업계는 믿었던 정치권에마저도 발등을 찍히는 처지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농업농촌을 대변해야할 국회의원 수마저 줄여야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월 30일 국회의원 선거구 간의 인구차이를 최대 3배까지 허용한 현행 법률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구별 인구 편차 비율이 2대1을 넘어서지 않도록 하라”는 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이에 따라 2016년 20대 총선은 내년 말까지 선거구를 새로 조정해 치러지게 됐는데, 도시인 서울과 6개 직할시, 경기도는 선거구가 늘어나지만 이를 제외한 지역, 다시 말해 농촌지역은 국회의원 선거구 감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회가 내년 말까지 선거구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제 밥그릇 지키기에 나서겠지만 농촌지역 국회의원 비율 감소까지 막아주는 열정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FTA로 대변되는 개방 파고에 맞서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그동안 기댈 언덕이었던 정치권마저 믿을 수 없게 됐고, 그나마도 줄어들 위기에 처한 게 2014년을 보내는 우리 농업을 둘러싼 현주소다.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농업계는 경쟁력 강화와 소득안정을 위한 예산확보에 목을 걸다시피 해왔다. 그리고 기대치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지만 확보한 예산을 바탕으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올해 예산이 통과되는 과정과 정치권상황을 보면 앞으로는 이마저도 녹록지 않을 것 같다. 그야말로 백척간두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한해를 보내고 2015년 새해를 맞는 이 시점에서 농업계는 외연확장이라는 새로운 길로 나서겠다는 다짐을 하고 각오를 다져야 한다. 국민을 설득해 지원군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정치권을 설득해 농업계 우군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농업은 버려진 자식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과 같이하고, 국민이 우군이 되는 농업을 만드는데 모두가 나서야 한다. 내 발등은 내가 지켜야하지 않겠는가? 그 첫 단추는 힘을 결집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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