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기리에 연재됐던 ‘박현출 칼럼-농업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이번 호 부터 재 게재하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바이러스의 습격’은 우리나라의 한 가축질병 전문가가 2009년에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대해 소개를 한 책의 제목이다. 1918, 1919년 당시 최대 5000만 명이 희생되었다는 스페인독감, 그리고 최근 인류를 불안에 떨게 했던 신종플루나 사스 등은 현재는 예방과 치료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어느 정도 진정된 상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가축에 발생하고 있는 AI(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 등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야말로 바이러스의 습격이 계속되고 있다. 벌써 10년 넘게 축산업이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데 우리는 왜 아직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까? 우리의 방역시스템 어딘가에 아직 해결되지 못한 허점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바이러스는 크기가 워낙 작아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는 감지하기 어렵다. 보통 그 크기가 1만분의 1mm 정도라고 하니 전자현미경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바이러스는 세균과 달리 숙주인 동물의 몸 속에서만 증식할 수 있고, 또 한꺼번에 새끼 바이러스를 대량으로 복제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들은 적절한 환경만 갖춰지면 동물의 몸 밖에서도 상당기간 생존한다.
이 바이러스들을 없앤다고 철새들이 몰리는 들판을 향해 소독약을 뿌려대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러나 그것으로 바이러스들이 완전하게 제거될 수는 없다. 계속해서 철새들이 몰려오고, 또 해외로부터 사람이나 물건들이 부단히 우리 주변으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농장주들은 주변에 바이러스성 질병이 발생하면 심지어 농장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오랜 기간 감금생활을 하다시피 지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방어망이 뚫리는 모습을 주변에서 자주 본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방역상 허점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바로 그 허점 중의 하나가 야생동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보통 농장 주변에는 쥐나 야생고양이, 철새, 심지어 집에서 기르는 개까지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바이러스는 그 크기가 매우 작아 야생동물의 발바닥이나 털에 묻혀 쉽게 이동한다. 농장주들이 아무리 열심히 소독을 하고 주의를 기울여도 이 야생동물들의 출입을 막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바이러스가 농장 안으로 침투하는 것이다.
어떤 농장에서는 생석회를 주변에 잔뜩 뿌려놓고 이 정도면 되겠지! 안심을 하는데, 알다시피 생석회는 아무리 많이 쌓아놓아도 물과 접촉하지 않으면 열을 내지 못해 소독효과가 없다. 더구나 쥐나 고양이는 왠만한 담은 쉽게 넘나들고 또 쥐라는 녀석은 구멍을 파서 땅속으로 출입하기도 한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 성과를 제대로 거두려면 이러한 야생동물의 출입을 봉쇄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축사 주변에 촘촘한 그물망을 치거나, 담장이나 천정으로 고양이, 쥐가 들락거리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이를 기본으로 해서 농장을 들고나는 사람과 사료 등을 열심히 소독하면 우리도 AI나 구제역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축산농업인들이 가축질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들께 축산업의 중요성을 이해시킬 수 없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미룬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민을 건강하게, 들판을 풍요롭게 하고자 한다면 축산인들이 모든 아이디어를 다 동원해서 이 질병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전 농촌진흥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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