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업을 묻는 질문에 “농사를 짓는다”고 답할 때가 있다.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워 결실을 거두는 일이, 떠오른 생각을 붙잡고 줄거리를 엮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창작의 과정과 닮았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땅에 짓는 농사든 종이에 짓는 농사든,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자신의 노력을 잘 이해해주지 않는 것도, 그 결실이 있기까지의 애탐과 애씀을 빤한 엄살로 치는 것도, 또 품값 빠지기 어려운 수매를 걱정하는 것도 퍽 닮았다. 시세와 수입농산물 홍수를 염려하는 농업인들처럼, 글농사꾼들도 나날이 수직 강하하는 판매부수와 인기 번역물의 서점 가판대 점령을 두려워한다는 점에서도 처지가 다르지 않다. 아,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햇빛과 바람과 물과 땀의 세례를 받은 농사의 결과물이 우리 몸을 살리는 것이라면, 소설이라는 것은 자칫 한때의 소일거리로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참농사꾼 앞에 명함 내밀기 부끄러운 이유다. 농사를 짓는 일은 생명을 짓는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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