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근처에 보리밥집이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기승을 떨치던 2주전 회사로 찾아온 손님과 보리밥집을 찾았다. 예약을 하고 갔지만, 종업원이 편한데 앉으라고 해서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은 시끄러울 각오를 하고….
  점심을 다 먹고 나오도록 옆자리는 물론이고, 주변자리도 채워지지 않았다. 결코 적지 않은 규모의 식당인데, 3팀이 점심을 했다. 평소 같으면 문전성시를 이루는 식당인데 텅 비었다. 바로 메르스 여파다.
  메르스가 국내 외식업, 관광업을 강타하고 있다. 외식업이 위축되면 농축수산물 소비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던 서울 명동거리도 텅 비었다는 보도가 나온 지 오래다.
  메르스에 이어 이보다 더 무서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 농축수산업을 옥죄려고 기다리고 있다. 지난 3월 27일 제정, 1년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9월 28일 시행될 세칭 ‘김영란법’이다. 이 법은 ‘공직자뿐 아니라 기자 등 언론사 종사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 원을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 시행을 앞두고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시행령 마련에 나서고 있는데, 시행령은 농산물 소비 자체를 막을 소지가 농후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한국법제연구원과 공동으로 최근 개최한 공개토론회에서 부정한 금품으로 규정되는 농산물 범위를 화훼류 3만~5만원, 농축산물 7만~10만원을 제시했다. 국민권익위원회 안대로라면 설이나 추석 명절 선물용 특수가 많은 한우고기와 과실류, 굴비 등은 소비길이 막히게 된다. 선물수요가 절대적인 화훼류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품목의 소비가 위축되면 다른 농축수산물이라고 온전할 리 만무하다. 이 법이 시행되는 내년 9월말 이후 국내 농축수산업은 설자리를 잃게 될 게 뻔하다. 과수농가와 한우농가는 이미 이 법 영향권에 들어갔고, 어업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모든 농업인은 당장 내년부터 무슨 농사를 지어야 할지 걱정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 법 적용대상자들은 3만원이 넘는 식사도 할 수 없게 된다. 저녁에 1인당 단가 3만 원 이하 식당은 찾아보기 어렵다. 법 적용대상자에게 위법을 하든지, 아니면 저녁자리를 아예 갖지 말든지 양자택일 하라는 얘기다. 결국 식당업도 다 죽으라는 얘기다. 식당이 저녁장사를 하지 못하게 되면 식당 자영업자는 일터를 잃을 수밖에 없다. 농축수산물 소비도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김영란법 자체를 타박할 생각은 없다. 이 법은 부정부패를 막고 투명한 사회 실현을 위해 꼭 필요한 법이다. 김영란법은 법에 이미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 원을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굳이 시행령을 통해 이중처벌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시행령을 잘못 만들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메르스나 김영란법이나 농축수산물 소비위축을 통해 농축수산업과 농어업인의 목을 옥죈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메르스는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고, 김영란법은 내부적 제도적 요인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메르스는 내부적으로 조율을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지만, 김영란법은 국내적인 조율을 통해 서로가 윈-윈하는 방안 도출이 가능하다고 본다. 농축수산물을 굳이 시행령에 ‘부정한 금품’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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