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과거에 집착하다 세상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좋은 기회를 무산시켜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날로그 시대 세계 전자제품 시장을 석권했던 일본의 소니 회사가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쳐진 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어떤 기업, 어떤 산업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
21세기의 큰 변화 중의 하나는 과거에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고령사회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유럽대륙과 미국, 일본, 한국 등은 이미 고령사회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고, 중국도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세계에서 젊은 인구를 가장 많이 보유한 지역은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소득수준이 비교적 낮은 곳들이다. 2050년쯤 세계경제의 판도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2020년과 2050년 사이에 급격하게 나타날 고령사회의 영향을 미리 예상해보고 준비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령사회는 필연적으로 노동력 부족을 심화시킨다. 특히 노동의 강도가 높은 농업분야에서는 기계화, 시설자동화 투자를 늘리지 않으면 산업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로봇을 이용한 농작업, 완전 자동화된 시설농업의 필요성이 그 어느 산업분야도 크다. 선진화된 한국의 IT기술을 바탕으로 로봇화, 자동화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고령사회는 농수산물의 소비행태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지금까지는 사과ㆍ배를 크게 만들어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 반대가 될 것이다. 최근 도매시장에서는 사과 15kg 상자를 10kg 상자로 축소시켜 유통시키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 기능성 식품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 틈을 타 일부 수입 잡곡들이 수퍼푸드로 불리며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동식물들의 건강기능성 유전자를 적극 찾아내야 함은 물론 이러한 유전자들이 듬뿍 함유된 새로운 종자개발에도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고령사회는 필연적으로 고령자들이 보람을 느끼며 일 할 수 있는 산업 활동을 장려하게 된다. 고령자들은 소비활동을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지만 인간의 생존과 행복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귀농ㆍ귀촌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도 고령자들이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증거로 보인다. 비록 작은 규모일지라도 유기농산물을 생산해서 소비자의 건강을 챙기고 지구환경을 살리는데 기여한다면 노후의 삶이 얼마나 가치있는 삶이 될 것인가?
우리는 눈 앞에 다가온 고령사회에 알맞게 농업의 틀을 전면 재편해야 한다. 농업은 일반적으로 다른 산업에 비해 변화를 꺼리는 경향이 높은 편이다. 좋은 기술이 개발되어도 주변에서 널리 검증된 것이 아니면 적용하기를 꺼린다. 생물을 다루는 산업의 특성상 모험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매일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기술을 농업인 개개인이 탐구하고 소화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농업도 과거의 관행에 안주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한국농업은 5000년간 이어 온 모습을 송두리째 바꾸는 중이다. 미래농업의 경쟁력은 지금껏 가보지 않은 길을 우리 농업인이 얼마나 빠르게 찾아내고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 ‘과거의 경험’을 참고로 하되 자유로운 상상력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박현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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