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광복이후 70년. 우리나라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듭, 국민총생산(GDP)은 2014년 기준 1485조원으로 1953년 477억원에 비해 무려 3100배가 증가했다. 이를 달러로 환산하면 1조4104억 달러로 세계 13위에 이른다. 또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53년 67달러에서 2014년 2만8180달러로 증가했다.
  이러한 고도성장구도 가운데 농업분야와 비농업분야의 성장률 차이는 급격하게 나타나 1953년대 48.2%이던 농림어업의 GDP 비중은 2014년도 기준 2.3%로 급락했다. 
  또한 농업취업자도 1976년 524만명에서 1990년에는 310만명으로 15년 사이 40%나 감소했으며 고령화도 급격히 진행됐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에도 녹색혁명, 백색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농업기술개발과 농업정책개발 등을 통해 우리나라 농업·농촌은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며 산업으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확보하고 발전해왔다. 이러한 광복 70년, 농업 70년 동안 우리나라 농업·농촌을 이끌어온 국내외 선구자 10인의 발자취를 밟아봤다.
<특별취재팀>


#우장춘 박사
-해방후 식량난 해소·국산 종자개발 기역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는 채소종자의 국내 자급과 무균종서 생산으로 해방 후 식량난 해소와 국산 종자개발에 기여했다. 일본에서 출생한 그는 1936년 동경제국대학에서 농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한 후 숨을 거둔 1959년까지 만 9년 5개월간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중앙원예기술원장·원예시험장장을 역임했다. ‘유채품종의 특성조사’ 등 여러 논문을 발표해왔던 우장춘 박사는 1935년 십자화과속의 식물에 관한 게놈분석을 시도한 박사학위 논문 발표로 연구의 절정을 이뤘다. 우장춘 박사가 사망하자 정부는 부산시문화상에 이어 두번째 문화포장을 수여했고 그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렀다.

#조봉암 농림부 초대장관
-농지개혁 완수…소작농 혁파·자작농 기틀마련

  조봉암 우리나라 초대 농림부 장관(1948~1949)은 농지개혁 완수를 통해 소작농을 혁파하고 자작농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조봉암 장관이 마련한 농지개혁을 통해 60만ha 농지를 분배, 소작지가 1945년 65%에서 1951년 8%로 감소하고 순자작농가가 1945년 29만호에서 1951년 93만호로 3.2배 증가했다. 이 같은 농지개혁을 통한 성과로 인해 조봉암 장관은 우리 농업이 자작농 위주로 발전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허문회 박사
-통일벼 등 다양한 품종개발 주도…농학계 선구자 역할

  허문회 박사는 통일벼와 교잡육종 기술로 각각 쌀 자급 달성과 다양한 품종개발을 주도해 우리나라 벼 발달에 기여, 우리나라 농학계 선구자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중앙농업기술원과 농사원(현 농진청) 농사시험장에서 활동하다 서울대 농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연구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IRRI)를 통해 최신 벼 육종 기술을 접한 후 기존 재래종 벼보다 많은 볍씨를 가진 통일벼 모종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한국육종학회장, 한국작물학회장을 지냈다.

 

#김삼만 회장
-다양한 농기계 생산·공급…국내 농업 생산력 향상

  김삼만 회장은 우리나라 농업 기계화 기틀을 마련한 대동공업의 창업주다. 그는 농업 기계화의 대표주자인 동력경운기 생산을 시작으로 콤바인 트랙터 등 다양한 농기계를 생산·공급해 국내 농업 생산력을 향상시키고 농기계 산업발전에 기여했다. 김삼만 회장은 1947년  대동공업을 설립, 농기구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 초부터 사내 연구소를 세우고 농기계를 연구했다. 1962년 동력경운기 개발을 시작으로 농업용 트랙터(1968년), 모내기용 이앙기(1977년), 수확용 콤바인(1982)을 출시해 우리나라 농업기계화에 앞장섰다.

#고희선 회장
-토종 종자업체 ‘농우종묘사’ 성장…세계 진출 실현

  고희선 회장은 우리 종자를 지키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그는 IMF(국제통화기금) 이후 외국 종자회사의 공세에 맞서 국내 종자주권을 주창하며 유일한 메이저급 토종 종자업체로 농우종묘사를 성장시켰다. 고희선 회장은 가난한 종묘상 직원에서 글로벌기업 경영인으로 성장한 기업인이자 우리종자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평가받는다. 고희선 회장은 장학재단을 통해 수많은 인재를 양성했고 투명경영을 철칙으로 기업을 성장, 세계 진출을 실현했다.

 

#김준보 박사
-농업경제학 학문분리…우리나라 경제학계 기틀마련

  김준보 박사는 농업경제학을 경제학의 분과가 아닌 독립된 학문으로 분리해 국내 농업경제학의 기틀을 닦았다. 농경제학회를 창설하고 초대 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통계학회를 창설, 학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학자로서 우리나라 경제학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을 가꾼 사람들 50인’ 학술분야 인물로 선정됐으며 1966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1947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1978년 대한민국 학술원상 저작상을 수상했고, 1983년에는 한국경제신문이 시상하는 다산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 H. M. Beachell 박사
-인공교배·계통선발 등 ‘통일벼’ 개발 기여

  H. M. Beachell 박사는 1965년 당시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IRRI)의 육종과장으로 재직하면서 허문회 서울대 농과대학 교수와 우리나라 녹색혁명으로 불리는 ‘통일벼’ 개발에 동참, 지대한 기여를 했다. Beachell 박사는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1965년 인공교배, 계통선발 등, 1972년 농가에 보급되기까지 무려 잡종 12세대에 이르는 육종을 통해 통일벼 개발에 힘썼다. 그는 1972년경 IRRI를 떠나 미국 텍사스 대학으로 복귀했다.

 


# 김홍국 회장
-농장·공장·시장 ‘3장 통합경영’…사업다각화추진

  김홍국 하림 회장은 1986년 하림식품을 세워 사육·사료·가공·유통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 연매출 4조원이 넘는 국내 최대 축산기업으로 키워냈다. 무조건적인 사업 확대가 아니라 축산을 기반으로 하는 단백질 식품 분야에 집중하면서 통합경영의 효율을 높인다는 원칙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했다. 그는 무엇보다 농장(사료 생산, 사육)-공장(도계, 가공)-시장(유통)을 수직계열화한 ‘3장 통합경영’으로 혁신을 이뤄냈다.

 

 

#지정환 신부
-국내 최초 치즈 전도사…임실치즈농협 초석 마련

  치즈가 생소했던 대한민국에 처음 치즈를 전파한 사람은 파란눈의 벨기에인 지정환 신부였다. 본명 디디에 세스테벤스인 지정환 신부는 지난 1964년 임실성당에 부임, 산양유와 젖소 등에서 국산치즈를 생산했다. 초기 목적은 지역농업인의 소득증대였다. 이 사업으로 지정환 신부는 한국 치즈 산업의 대부가 됐다. 이를 바탕으로 신용협동조합을 결성해 자본을 마련, 임실읍 성가리에 치즈공장을 설립하는 등 현재의 임실치즈농협의 초석을 마련했다. 한국 치즈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지정환 신부는 평생 봉사를 소명으로 알고 살았으며 최근까지도 다발성신경경화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채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인요한 박사
-봉사·나눔 소중함 전파…국산우유 소비홍보 촉진화롱

  연세대학교 가정의학과 교수이자 세브란스 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인 인요한 박사는 가족과 함께 5대째 우리나라에 살면서 봉사활동, 북한결핵퇴치사업과 의료장비 지원사업 등을 펼치면서 우리사회에 봉사와 나눔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는 파란눈의 대한민국 사람이다. 특히 의료인으로서 대한민국 우유의 우수성을 설파하며 우유 예찬론을 전파한 그는 최근 국산우유사용인증인 ‘K?MILK’ 홍보대사를 맡으며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 낙농산업을 위해 국산우유 소비홍보 촉진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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