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많다. 미국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제도가 한국보다 훨씬 늦게 도입된 것이 그런 사례 중 하나이다. 미국에서는 한 동안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면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거나 마치 국가가 망할 것처럼 과장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 우리나라 대표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도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볼 일이 하나 있다. 도매시장에서는 그 동안 전면적 경매방식에서 지금은 정가수의거래가 보완적 거래방식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매제도에 장점이 많긴 하지만, 정가수의거래도 거래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가수의거래를 할 수 있는 주체를 두고 기존의 도매법인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과 시장도매인을 새로 지정해 경쟁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 꽤 오랜 기간 대립해 왔다. 모두들 생산자를 위해서 그렇다는 것인데,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이 논쟁과정을 지켜보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과거의 사실을 꺼내 현재를 판단하는 이상함이다. 앞으로 시장도매인을 지정할 경우 정산은행을 만들어 출하자에게 대금지급을 100% 보장한다는데도, 수십년 전 위탁상 시절의 관행을 상기시키며 돈을 떼일 염려가 있다고 자꾸 불안감을 부추기는 것이 그것이다. 거래물량과 가격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해도 막무가내로 아니라고 한다.
둘째 사랑도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현재 도매시장에서는 시대변화를 반영해 경매 대신 정가수의거래 확대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도매법인이 경매물량을 줄이고 정가수의거래를 늘리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데, 시장도매인이 그렇게 하면 경매를 위축시켜 안된다고 한다.
셋째 도매법인은 착한 존재이고, 시장도매인은 나쁜 존재라는 이상한 구분법이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기업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 국가경제 전체가 활성화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기업이 독과점 체제를 형성하면 반드시 폭리를 취하는 등 나쁜 버릇이 나타난다. 그래서 정부는 이를 막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도매법인이나 시장도매인이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임에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두고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그 핵심은 정가수의거래의 주체를 기존 도매법인에 한정할 것이냐, 아니면 시장도매인을 추가로 지정하여 경쟁체제로 갈 것이냐의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세상 어느 분야라도 독과점 체제가 오래 지속되면 그 폐해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30년 전에는 그런 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독과점 체제를 허용할 이유가 있었겠지만, 과연 지금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농수산물이 유통되는 모습을 보면 산지도 소비지도 30년 전에 비해 참으로 많이 변했다. 대형유통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온라인 거래가 크게 증가하였다. 가락도매시장은 지금 기존의 낡은 시장을 재건축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려 한다. 껍데기만 변할 게 아니라 거래방식도 선진화 해서 출하자와 소비자에게 더욱 봉사하는 도매시장으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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