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쌀은 우리에게, 농업에 있어 무엇인가? 쌀은 우리의 주곡이고, 농업을 대표하며, 국토 파수꾼이다. 쌀 한 톨 크기는 몇 밀리미터에 불과하지만…. 이런 쌀을 둘러싼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쌀쌀하다.
  쌀은 조금만 넘치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 일쑤다. 2년만 풍년이 들어도 넘치는 재고로 쌀은 마치 ‘공공의 적’(?)이라도 된 듯하다. 반대로 2년만 흉년이 들면 쌀이 부족해 쌀 재배농민과 농정당국자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 같다. 수급불안정으로 쌀값이 떨어져도, 쌀값이 올라도 농정은 질타의 대상이 된다. 쏟아 부은 돈이 얼마인데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따가운 질책이 이어진다.
  급기야는 기획재정부가 지난 달 16일 쌀을 옥죄는 내용의 ‘2016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규제프리존 도입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방안’으로 치장을 한 2016년 경제정책방향은 겉으로는 전(全)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통한 국가경쟁력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참에 농지규제를 확 풀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농업진흥지역의 10% 정도인 10만ha에 대해 지정을 해제하거나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주곡인 쌀 수급문제는 수입에 맡기고, 돈 먹는 하마로 보이는 쌀에 대한 문제도 일거에(?) 해결해보겠다는 기획재정부의 꿍꿍이속이 숨겨진 것처럼 보인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지난해 연말 희뿌연 불빛도 보이기 시작했다. 쌀이 호주와 뉴질랜드로 수출되기 시작했고, 비록 묵은 쌀이기는 하지만 사료용으로도 사용되게 됐다는 점이다. 이번 쌀 수출은 농지가격 부담이 없는 대호간척지 쌀수출단지에서 생산됐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간척지에서 ha당 4톤의 쌀을 생산할 수 있는 재배기술에 그동안 축적해온 종자 등 생산자원을 효율적으로 재조합하면 쌀을 본격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날도 멀지 않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쌀을 사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점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쌀을 사료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국민정서를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쌀 시장이 해외로 확대되고, 내수도 사료용으로까지 늘어나게 된 것이다.
  쌀은 이처럼 갈림길에 서 있다. 한 길은 앞날을 담보하기 어렵다. 다른 한 길은 희망을 갖게 한다. 그동안 쌀산업 관련 정책은 개방화시대를 맞아 규모화와 재배농가 소득지지에 초점을 맞춰져 왔다. 그 결과 규모화는 어느 정도 달성했지만, 쌀농업을 통한 소득지지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데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하다. 왜 그럴까? 돈은 쏟아 붓는데 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까? 답을 찾지 못하면 쌀산업의 미래는 험난한 하루하루가 될 수밖에 없다. 혼자만의 기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 해법은 유럽의 농정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유럽의 농정은 산업정책과 환경보호라는 ‘투 트랙(Two Track)’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규모화된 농가에게는 산업정책, 다시 말해 경쟁력강화정책으로 뒷받침을 해주고, 소규모농가는 농업의 환경보호기능과 연계해 소득지지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 쌀농업도 어느 덧 20%의 농가가 80%의 생산을 담당하는 20대 80법칙에 진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재의 쌀산업을 위한 제도는 소규모농가의 소득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우리 쌀산업도 유럽과 같은 투 트랙 접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전업농가는 수입보장보험으로 수입을 안정시켜주고, 소규모농가는 환경보호와 연계한 소득지지정책으로 쌀산업의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희망을 안고 그 논의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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