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를 비롯 미국, EU, 호주, 뉴질랜드, 중국 등 농업 강국들과의 FTA(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한 농축수산업계 피해가 하나씩 가시화되고 있다. 굳이 정책연구소가 분석한 피해분석 자료를 들지 않더라도 집 근처 마트에서나, 길가의 노점상, 매일 가는 음식점 등등에서 수입과일과 축산물, 수산물들은 넘쳐나고 있다.
  소비자들은 처음에는 바다 건너 멀리 온 수입산 농축수산물에 대해 이게 안전할까, 맛은 괜찮을까 등등에 대한 의혹의 시선을 보냈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해가 지나고 직접 먹어보면서 이같은 의혹의 시선을 하나 둘씩 걷어내고 있는 것 같다. 먹어보니 그럭저럭 먹을 만하고, 무엇보다 국내산 보다 싼 가격에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4년 4월 칠레와 첫 FTA를 맺을 때만 해도 FTA 여파는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 한·EU, 한·미 FTA 등등 굵직굵직한 FTA발효가 더해지면서 당초 농축수산업계가 우려했던 피해가 아주 구체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통계 수치를 통해서도 여실이 드러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과일 수입액이 2000년 3억 5000달러 수준이던데서 2014년 16억 8000달러로 연평균 11.9%씩 성장했다. 2000년 대비 2014년 수입액은 무려 3.8배나 늘어났다.
  2014년 현재 1억 달러 이상 수입하는 과수 품목도 바나나, 포도, 오렌지, 버찌 등 4개 품목이나 된다. 2013년 과수 생산액 총 4조 1140억원 대비 2014년 수입액 비중은 무려 45.5%나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 소비자들이 먹는 과일 중 절반 가량은 수입산인 셈이다.
  쌀 시장은 지난해부터 완전개방됐다고 하지만 아직 시장 개방 여파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수 년의 세월이 지나고, 수입산 쌀을 먹어본 소비자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날수록 국내 시장을 시나브로 잠식해 나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뿐인가. 시장 변화에 따라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사과, 배, 수박 등의 경우 소비자들은 더 이상 큰 사이즈를 원하지 않는다. 사과나 배의 경우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사이즈를 더 선호하고, 수박 역시 1~4인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작은 사이즈를 원한다. 지금과 같은 사이즈의 수박만 계속 생산된다면 아마 가정에서의 수박 소비는 급격하게 줄어들 게 뻔하다.
  이처럼 가시화되고 있는 FTA, 변화하는 소비시장 등 농축수산업계 놓인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그러나 어느 분야이건 시장은 전쟁터다. 누가 더 많은 파이를 가져가느냐를 놓고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곳이다. 우리는 이미 상당 품목의 경우 우리 시장의 절반 가량을 빼앗겼다. 시장을 더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빼앗긴 시장을 되찾기 위해서 농업계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    
  그게 의무자조금 도입이든, 산지 조직화든, 마케팅 보드 육성이든 뭐든간에 이제는 속도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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