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폭락가 기준 RPC·대형유통업체 장기계약…하락 부채질

정부의 신곡 수요량 초과물량에 대한 전량 격리 조치 발표에도 산지 쌀값 하락 추세가 멈추지 않으면서 농업 현장에서는 들녘에서 ‘절망’만 추수했다는 한탄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쌀 값 하락 요인으로 △대폭락한 쌀값을 기준으로 대형유통업자와 RPC(미곡종합처리장) 간 계약 체결 △농협의 사후정산제 △재고 누적으로 인한 쌀 저가 유통 등이 꼽히고 있다.

쌀값 폭락의 주요 원인으로 대형유통업체와의 저가 계약이 꼽히고 있다. 대형유통업체들이 대폭락한 올 산지쌀값을 기준으로 RPC와의 장기계약을 추진, 쌀값 하락세를 부추기고 잇속만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한 RPC업계 관계자는 내년에 쌀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대형유통업체에서 장기계약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부터 대형유통업체와 계약이 체결되고 있는데, 대형유통업체들은 쌀값이 앞으로 반등할 것으로 보고 현 최저가격을 기준으로 장기계약을 유도하고 있다”며 “사실상 주도권은 대형유통업체가 갖고 있어 RPC 입장에서는 고정거래대상 확보 차원에서 ‘울며 겨자먹기’ 심정으로 현 수준에서 장기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대형유통업체들이 수확기 때 폭락한 벼 수매가를 근거로 RPC에서 요구하는 햅쌀 수매가보다 낮은 가격에 계약을 종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쌀값 하락이 멈추지 않는 것은 수확기 산지 벼 값이 폭락한데다 쌀 원료 값 등이 다 노출됐기 때문”이라며 “RPC들의 벼 매입가와 가공비, 운반비 등이 다 노출돼 이를 근거로 대형유통업체들이 낮은 가격을 책정하고 있어 쌀값의 추가 상승 여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환 GSnJ 농정전략연구원장은 쌀값 하락의 원인으로 농협의 사후정산제 등을 꼽았다. 김 원장은 “농협RPC가 사후정산제를 도입한 것이 쌀값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또다른 쌀값 하락 요인으로는 몇 년째 재고 누적으로 RPC간 경쟁심리가 발동돼 서로 눈치 볼 겨를 없이 벼 매입 원가에 조금의 이익만 붙여 팔는 상황이 빚어진 것을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쌀 폭락 원인을 두고 농협RPC와 민간RPC의 분석도 다르다.

농협RPC는 민간RPC와 임가공·도정공장 등이 수확기 때 저가에 매입한 벼를 보유하고 있다가 시장에 저가에 유통, 쌀시장 혼란을 부추긴다고 보고 있다.

문병완 농협RPC협의회장은 “개인 RPC와 임가공·도정공장이 저가에 쌀을 유통해 가격 반등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며 “더구나 지난해 쌀과 수확기 햅쌀이 시장에 동시에 방출되고 있어, 이 물량이 소진이 돼야 쌀값이 반등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반면 민간 RPC들은 농협 RPC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한 RPC 통합이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들은 “규모화되면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RPC 간 연합도 통합으로 인정해주면서 구조 조정 없이 규모만 커져 되려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며 “통합으로 매입물량은 늘어나는 반면 판매의 경우 계통 출하 등 출하처가 겹쳐 쌀 판매 능력이 떨어지고 재고는 누적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고 전했다.

농민단체에서는 정부 뿐 아니라 농협에도 쌀값 하락에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이효신 (사)전국쌀생산자협회장은 “농협RPC는 벼 수매 후 도정해 부가가치를 높여 시장에 판매하기 보다는 민간RPC에 경쟁적으로 투매하는 고질적 악순환을 매해 반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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