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재협상해도 농업부문 '후순위'
우리측 개선요구품목 선제적 파악 우선돼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를 선언, 보호무역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추진하는 등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양자 무역협정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같이 세계 자유무역 질서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은 ‘자유무역’ 기치를 내걸고 발 빠르게 그 틈새를 파고드는 모양새다. 그간 중국이 꾸준히 추진해왔던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등이 TPP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세계 무역질서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국제 무역질서 판도의 급변이 우리 농업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 있을지 짚어봤다.

#美, TPP 탈퇴…농업부문 영향 제한적

미국이 TPP 탈퇴로 사실상 다자간 무역협정시대에서 양자간 무역협정시대를 선언함에 따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한·미 FTA 재협상이 트럼프 정부의 현 관심사가 아닌 상황에서 산업계 등을 중심으로 불거지는 한·미 FTA 재협상과 통상 압력 가중 등에 대한 우려는 ‘긁어 부스럼 만들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농업 부문의 경우 한·미 FTA 재협상이 현실화되더라도 기존 한·미 FTA 이후 미국의 농산물 수출은 성공적이어서 추가 개방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임정빈 서울대 교수는 미국의 TPP 탈퇴는 우리 농업에 단기적·상대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TPP 가입국이 아니었던 우리나라는 TPP 공식 발효 이후 TPP에 추가로 가입할 방침이었는데 미국의 TPP 탈퇴로 시간을 벌 수 있게 된 셈”이라며 “TPP 협상을 통한 무역원활화·투명성 강화 차원의 시장개방, 통상규범 등의 압력이 기존 FTA보다 더 커 농산물 수입국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것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상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 농업부문에 있어 미국의 TPP 탈퇴 여파로 인한 부정적 이슈의 발생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그간 미국이 주도했던 TPP의 경우 통상규범 수준이 높아 우려스러운 면이 많았다”며 “미국이 TPP를 탈퇴하고 보호무역주의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 우리 농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부연구위원은 한·미 FTA 재협상에 있어 미국 측이 서비스분야, 제조업분야, 규범분야 등에 대한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큰 반면 농업부문은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있다고 봤다. 그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때부터 정부 출범 이후에도 농업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상황”이라며 “앞서 한·미 FTA는 2010년 재협상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냉동 돼지고기 관세 철폐기간을 연장한 바 있다”고 밝혔다.

송주호 GSnJ 인스티튜트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도 한·미 FTA로 인한 농업부문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고, 미국이 비농업 분야 재협상 요구 시 우리 농업분야에 있어 개선을 요구할 만한 품목을 선제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송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리 농업 분야가 내어줄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는데다 현재에도 미국 농산물 수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오히려 농업분야는 미국 측으로부터 양보 받을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RCEP, TPP 양허수준 타결 어려워

TPP가 사실상 무산되자 중국이 그간 미국 중심의 TPP에 맞서 추진해온 RCEP이 탄력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TPP 탈퇴로 RCEP 협상이 진전을 이루는 등 중국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면서도 중국이 다자간무역협정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부연구위원은 RCEP이 타결되더라도 TPP 양허 수준에는 이르지 못할 것으로 봤다. 그는 “현재 RCEP 협상이 진행 중이나 일본, 호주 등 기존 TPP 회원국들은 TPP에서 합의된 규범을 RCEP에 추가하고 싶어하는 반면 중국, 아세안 국가 등은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국이 이러한 통상규범을 받아들일만한 역량이 안 되기 때문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RCEP은 TPP 수준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송 시니어 이코노미시트도 “RCEP 회원국에는 일본, 호주, 뉴질랜드 외에도 인도가 있는데 인도는 농산물 양허수준이 굉장히 낮은 국가”라며 “이같은 점들을 비춰볼 때 TPP처럼 높은 수준으로 양허키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TPP에서 회원국 간 합의된 통상규범이 RCEP 등 여타 다자간 무역협정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호주, 뉴질랜드 등이 TPP에서 합의된 통상규범을 RCEP에 적용시킬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TPP에서 합의된 통상규범을 주의 깊게 분석하고 국내 제도나 법 등을 정비하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임 교수는 중국이 다자간 무역협정에서 통상규범을 주도하는 것은 어렵다고 봤다. 그는 “중국은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에 중국의 힘이 강화된다 하더라도 미국처럼 다자간 무역협정을 주도할만한 역량이 부재하다”며 “중국이 선진국처럼 통상규범을 따라갈 체제가 정비돼 있지 않아 중국 주도로 모일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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