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시행이후 맞은 첫 설, 설마 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됐다. 각 대형유통업체와 생산자 단체들은 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선물 상한에 맞춰 아이디어를 총 동원해 실속형 선물세트와 다양한 할인행사를 벌였지만 올 ‘설 특수’는 완전 실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탁금지법 여파와 경기침체 악재까지 맞물리면서 소비심리는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었다. 실제 본지가 각 대형마트와 가락시장 농수산물도매시장 등을 대상으로 이번 설 매출을 취재한 결과 일부 백화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다수의 매장에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역신장’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설 선물세트인 한우시장은 아예 ‘철퇴’를 맞았다. 업계는 축산물 선물세트 시장의 경우 평년 보다 20%가량 추락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법에서 5만원 이하의 선물은 해도 된다고 명시했지만 친인척을 제외한 직장동료나 지인들은 서로 부담이 될 것을 염려해 아예 선물세트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풍토가 형성된 것이다.
설 시장 ‘직격탄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특수 실종으로 인한 매출 하락 문제 뿐 아니라 이후 시장에도 심각한 여파를 미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사과, 배 등 설 시즌에 소진돼야 할 물량이 팔리지 않으면서 품목별로 수급문제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소비 위축과 재고과다로 인한 시장 가격 하락은 고스란히 농가 피해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청탁금지법의 폐해는 농축산물 뿐 아니라 화훼업계도 직격탄을 날렸다. 법 적용 대상자가 아니어도 꽃 선물을 피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데다 80%이상이 선물용으로 사용되는 독특한 소비구조 때문에 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소매는 전년대비 26.5%나 거래금액이 줄었으며, 도매 역시 전년대비 13% 거래물량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꽃다발은 27.5%, 화환은 20.2%, 관엽은 35.8%나 줄었다.
정치적인 혼란과 요동치는 국제 정세, 경기 위축 등 대내외적인 위기 상황에서 청탁금지법으로 인한 피해가 더 확산되기 전에 지금이라도 손을 봐야 한다. 농축산업계가 당초 요구했던 대로 청탁금지법 적용에 농축산물을 제외시켜야 한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농축산업계에 미치는 피해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또 휘청대고 있는 국내 시장의 혼란을 틈타 저가의 수입 농축산물이 빠른 속도로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FTA(자유무역협정)시대 어렵게 지켜오고 있는 국내 농축수산 시장이 회생불능 사태를 맞지 않도록 청탁금지법을 하루속히 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