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가 경제지주 산하 소매유통 자회사들을 통합하지 않기로 내부방침을 정한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위에 다름 아니다. 겉으로는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농민권익보호를 주창하면서 속으로는 여전히 조직 이기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매유통 자회사들의 통합은 비용을 절감하고, 조직의 효율성을 높여 농산물 판매를 확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알려져왔다. 농협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직시해 농협유통을 비롯해 농협충북유통, 농협부경유통, 농협대전유통을 통합키로 하고, 원활한 통합을 위해 하나로유통까지 설립했다.

소매유통 자회사는 개별 법인으로 운영돼 그동안 독립적인 마케팅과 농산물 구·판매를 실시해 왔다. 농협이란 같은 브랜드를 달고도 운영은 독립적으로 하다 보니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도 비용은 비용대로 지출되는 구조였던 셈이다.

대형유통업체의 매출하락은 비단 농협만이 아니다. 소가족화, 고령화, 최근에는 나홀로 가족까지 생겨나면서 대형유통업체의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유통업체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줄이는 노력은 물론이고 한 때 유행했던 PB브랜드를 넘어 이제는 노브랜드까지 내 놓으며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농협이 소매유통 통합 계획을 철회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농협이 사업구조개편을 통해 경제지주회사를 만들면서 판매농협으로 거듭 날 것을 제1의 모토로 삼은 점을 고려해 볼 때 더 더욱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유통자회사를 통합하면서 발생하는 세금과 노조의 반발을 이유로 들긴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분 인수 시 발생하는 세금 400억원은 2015년도 손익계산서에 반영해 이미 비용화시켜 놓은 상태로 향후에는 이자만 발생하는 것이어서 통합이후 절감되는 비용에 비할 게 못된다.

이 같은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이대로 두면 농협 소매유통이 살아날 수가 없다. 노조의 반발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조직이 있어야 직원도 있고, 노조도 존재할 수 있다. 특히 농협의 소매유통 통합계획 발표시점에 이 문제는 어느정도 해소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소매유통 통합계획 철회에는 조직이기주의와 통합으로 인해 사라지는 60여개의 자리를 아깝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같은 합리적 의심은 농협중앙회의 겉과 속이 다른 이중잣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변화하지 않으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조직을 모른 채 하면서 인사권을 휘두르고, 회원농협 조합장들을 관리하는 도구로만 활용하는 것은 농협의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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