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돌고 있는 생태계, 특히 식물을 들여다보면 긴 겨울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그들만의 소리가 있다. 죽은 것처럼 보였던 자신들이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보여주는 명확한 외형적 상징으로 움(싹)을 틔우는 역동적인 소리이다.

1962년 미국의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 여사가 집필한 ‘Silent Spring(침묵의 봄)’이라는 책은 그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꽃도 피지 않고 새도 울지 않는 침묵하는 봄이 오고 있음을 경고해 당시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바 있다. 봄을 침묵하게 만든 범인은 잔류성 환경오염물질들로 지목됐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화학물질들 중 일부가 환경 중에서 분해되지 않고 남아 생물체들에게 지속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과학적 관점으로 지적한 소중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계기로 인류는 환경오염물질 즉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OPs)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급기야 스톡홀름 협약을 채택해 2001년부터는 이러한 물질들의 사용을 국제적으로 제한하고 규제하게 됐다.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2017년의 봄을 바라본다. 매화꽃, 산수유꽃이 피어나고 있는 지금 곧 이어 목련과 개나리도, 진달래도 움을 틔우고 꽃을 피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앞에 온 봄은 어떠한가? 정치적 이슈들로 채색된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온 거리에 울려 퍼져 봄이 왔는데도 봄의 소리를 듣지 못하니 마치 또 다른 침묵의 봄이 온 것 같다.

최근 몇 개월간 우리 사회는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갑론을박으로 너무나도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생업에 충실해온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은 이 엄청난 충격을 소화해내기가 정말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우리 국민들은 소위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동요되기도 했다. 비록 지난주에 발표된 헌재의 결정에 국민 모두가 만족하지는 못할 수 있겠지만 민주주의 법질서 하에 나온 결과이기에 그 결정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여 년 전 IMF라는 큰 산을 만나 힘든 적도 있었지만 그때에도 우리 국민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말없이 자신의 책무를 다해 이를 잘 극복한 바 있다. 이제 다시 한 번 도약해야 할 이때, 너무나도 안타까운 국면을 맞이했지만 이 또한 우리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제 우리를 짓누르던 분열과 갈등의 답답한 짐을 벗어 버리고, 그동안 잘 가꾸어 온 자연의 그 소리를 들었으면 한다.

이제 우리 모두가 침묵하며 자연의 소리를 들을 때이다. 1962년 당시에는 과학자들이 과학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환경오염물질에 의해 침묵하는 봄이 왔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이제는 우리들의 소리를 죽여 자연의 소리를 듣고 성찰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오염물질들에 의해 침묵하는 봄이 아닌, 거시적인 화합과 일치에 의해 우리들의 이해 타산적 판단을 내려놓는 또 다른 침묵의 봄을 맞이하고 싶다. 그 봄의 소리를 듣고 일련의 국가적 위기와 갈등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치유되기를 바란다. 

봄의 소리와 함께 싱그러운 봄 향기가 우리의 코를 자극하는 지금 자연에서 봄을 만끽하고 싶다. 잠시라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사람들의 소리를 멈추고 침묵하는 시간을 가져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길 바란다. 바로 그때 우리들 안에 용서와 화해의 싹이 움터날 것이라 확신한다.

김장억 경북대학교 응용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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