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AI(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긴장의 끈을 놓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1일까지도 충남 공주에서 AI가 나타나는 등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일 기준 살처분된 가금류 마릿수 3782만마리 가운데 산란계가 2518만마리로 높은 비율을 차지, 이번 AI가 산란계 농장에서 집중적으로 발생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정부는 AI 방역개선대책의 일환으로 계란 GP(Grading&Packing)센터를 통한 계란유통구조를 개선해 감염 매개체 접촉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계란 GP센터 설립 방향과 과제에 대해 살펴봤다.

  <上>계란 GP센터 설립 추진 방향
  <下>계란 GP센터 설립 기대와 우려

# 적자운영 면치 못한 계란 GP센터
 

수년 전부터 계란 유통구조 투명성의 일환으로 계란 GP센터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활성화되지 못한 채 답보 상태를 이어왔다.
 

계란 GP센터가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운영을 지속해 나갈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계란 수집상들이 계란 GP센터를 거치지 않고 농가들을 직접 방문해 고시가격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하는 이른 바 ‘후정산’의 관례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계란 GP센터 운용의 실패사례로 현재 한국양계농협으로 합병된 서울경기양계조합이 꼽힌다. 경기 광주지역에 국내 최초로 GP센터 문을 열었지만 오히려 유통단계만 늘었다는 지적과 함께 농가와 상인들의 외면 속에서 2001년 폐쇄결정을 내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이같이 계란 GP센터는 활성화되지 못한 채 2015년 기준 35.7%만이 GP센터를 통해 유통되고 있으며, GP를 제외한 식용란수집판매업체 33.33%, OEM생산을 포함한 식품유통업체 22%, 소매처 직공급 9% 등이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 계란 GP센터, 다시 주목받다
 

그러나 이번 AI 사태에서 산란계 농장 중심의 수평전파가 문제점으로 대두되면서 현재는 계란 유통의 투명성 확보 차원을 넘어 질병방역 차원에서 계란 GP센터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계란 유통의 가장 큰 문제는 산란계 농가수인 1060농가 보다 훨씬 많은 수인 2414개 가량의 중소규모 계란수집판매업체가 난립, 한 농가에 많게는 5~6개의 계랍수집차량이 매일 농장에 드나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가 산란계 농장간 수평전파가 확산, 이번 AI의 화를 키웠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관련 업계는 질병전파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계란 GP센터 중심의 유통구조로 전환돼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GP센터에서 지정된 차량만이 농가에서 계란을 수집·운반토록 해 농가간 교차오염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지난 실패사례를 바탕으로 계란 GP센터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GP를 통한 계란유통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정주 건국대 명예교수는 “계란 GP센터를 통해 유통의 투명성, 품질향상 뿐만 아니라 질병의 수평전파도 최소화시킬 수 있다”면서 “그동안 GP센터의 필요성은 양계협회를 통해 누차 정부에 건의했으나 예산의 부족 등을 이유로 무산됐으나 이제 이를 본격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 정부, “단계적 GP센터 도입 검토”
 

이같은 상황에서 농림축산식품부는 우선적으로 ‘거점 계란인수도장’을 지정·운영하며, 단계적으로 계란 GP센터 유통체계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계란 수집차량의 잦은 농장 출입 제한을 위해 계란 GP센터와 같은 거점시설 유통 확대가 필요하지만 사회적 비용 부담 등의 이유로 단기간 내 실시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GP센터를 통해 계란이 유통될 경우 추가적 선별, 세척, 포장, 이용수수료 등으로 비용이 10~20%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단기적으로 계란을 입고·출하하는 형태의 단순 물류센터 형태로 거점 계란인수도장을 AI 발생위험이 높은 10월부터 2월까지 운용하되 희망물량에 한해 GP센터를 통한 계란 세척 및 재포장을 한다는 것이 농식품부의 방침이다.
 

이와 관련 업계는 계란 GP센터를 조속히 법적 의무화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GP센터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결국 문을 닫게 된 이유에는 법적규제가 없었다는 게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에선 계란 GP센터의 법적 의무화에 대해 장기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발표했지만 설립 추진이 장기화될 경우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이상목 대한양계협회 부장은 “그동안 계란유통상인과 농가간 뒷정산, 이른바 후정산이 계란유통센터의 걸림돌이 돼 왔다”면서 “법적 의무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정부가 원하는 유통구조 개선도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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