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업·농어촌 다원적 가치, 세계는 ‘이미’

EU(유럽연합)나 일본,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농업·농촌의 다원적, 공익적 기능에 대한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 농업인의 기본소득과 권익을 보장하는 정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는 농업이 일정수준의 생산기반을 유지하지 못해 농업의 다양한 가치를 잃게 된다면 이를 되찾기 위해선 더 많은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되므로 농업유지를 위해 정부가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세계는 국가 안위와 높은 상관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선진국에서 바라보고 있는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과 구체적 사례를 살펴본다.
 
#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 세계가 ‘주목’하다

국제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농업이 식량공급이라는 본원적 기능 이외에 식량안보, 환경보전, 농촌사회 유지 및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비시장적 가치와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 경제발전 단계가 상이한 국가에 따라 농업의 다원적 기능의 범위가 다르게 해석되고, 농업이 창출하는 다양한 비시장적 가치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경제적 분석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지 못하면서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과소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다 지난 1992년 리우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부가 농업이 식량안보와 함께 다양하게 발휘하는 다원적 기능에 대한 중요성을 인정한 이후 식량생산이라는 전통적 기능과 함께 농업이 갖고 있는 환경·사회·문화적 기능과 가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 EU(유럽연합), 노르웨이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일정 수준의 농업 생산기반을 지지해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유지·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왔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은 농업·농촌이 발휘하는 다원적 기능 유지를 위해 농업과 농촌 지원이 필요하다는 정당성을 명문화하고, 이를 근거로 국민적 공감대 형성 속에 지속적으로 농업과 농촌지원의 확대를 추진해 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선진국들은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유지 및 강화하는 농정 수행으로 발생한 공익정 성과를 국민들에게 적극 홍보, 이를 근거로 농업 부문 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농업의 다원적 기능 유지 및 강화와 농가의 소득과 경영안정에도 동시에 기여토록 하고 있다.

# 국제기구에서 말하는 ‘농업의 다원적 가치’

더불어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논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FAO(식량농업기구), WTO(세계무역기구) 등 주요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OECD에서는 농업이 수행하는 농업생산 이외의 다양한 공익기능을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라 공식명명하고 이후 다원적 기능의 역할과 정책적 합의에 관한 분석을 하는 등 종합적이고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해 왔다.

또한 UN FAO에서는 1995년 캐나다 퀘벡에서 개최된 UN FAO 창설 50주년 기념 농업각료회의에서 채택된 퀘벡선언문에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란 표현이 포함된 이후 촉발됐다.

이후 FAO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사회적 기능 △문화적 기능 △환경적 기능 △식량안보 △경제적 기능 등으로 구분해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WTO 역시 농업협정 서문과 제20조에서 농산물 무역자유화 협상과정에서 식량안보, 환경보전 등 비교역적 기능(NTC)을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해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해외사례]
■ 스위스-“농업 다원적·공익적 서비스 기능 재정적 지원 강화”

▲ 스위스는 연방헌법에서 농업조항인 104조를 근거로 농업의 다원적, 공익적 기능을 강화해 왔다.

스위스는 헌법에 농업관련 조항을 독립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시한 대표적인 국가로 손꼽힌다.

스위스의 연방헌법 제7절 경제부문의 제104조에 독립적으로 농업조항을 두고, 농업의 역할과 기여에 대한 보장과 지원을 국가의 책무로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특히 스위스는 1996년 개정된 현행 연방헌법 제104조에 농업의 역할과 관련해 농업은 식량공급의 역할뿐 아니라 다원적 기능 발휘와 공공재도 공급한다는 개념을 공식적으로 명문화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스위스 연방헌법 제104조는 4개항으로 구성, 각 조항별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농업의 본원적 역할과 기능을 정의하고, 연방정부가 지속가능하고 시장지향적인 정책을 통해 이를 보장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농업이 발휘하는 다원적 기능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직불정책수단을 통해 농가의 상호준수 의무를 전제로 다원적·공익적 서비스 제공에 대해 농민에게 정당한 보상을 지불해야 함도 설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스위스는 연방헌법 제104조를 근거로 농업의 다원적·공익적 서비스 기능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강화해 왔다. 이를 통해 농업의 역할과 연방정부의 의무, 농업에 대한 연방정부 지원의 근거, 공익형 직접지불제도를 포함한 연방정부의 여러 농업정책 수단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제104조 마련 당시 농업계 등 여러 이해단체들, 시민들간의 토론과 합의를 거쳤으며, 최종 국민투표 결과 96%의 지지로 제104조가 설치됐다. 이는 바로 스위스 국민들이 농업의 역할과 기능으로 식량공급 이외에 식량안보 대응, 환경·동물친화적 생산체계 등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지역의 분산정착을 통한 전통문화 유지, 경관의 유지 등의 중요성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합의가 스위스를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공익형 직접지불제 중심의 농정추진 국가이자 가장 아름답고 생태적인 농촌관광국가가 된 사회적 기초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EU-“영농여건 안정적 유지 필요성…대대적 개혁추진”

▲ EU는 회원국에게 공통 적용되는 CAP를 중심으로 농업을 환경적인 공공재를 생산해 내는 주체로 인식하고 있다.

EU의 경우 농업을 환경적 공공재 생산주체로 정의하고 영농 여건의 안정적 유지에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해 왔다.

특히 EU는 회원국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농업에 관한 헌법초안 조항에 공동농업정책(CAP)에 의해 고려돼야 할 주요 목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 경제의 균형발전, 높은 수준의 환경보호와 개선 등을 설정하기도 했다.

EU 농업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CAP는 1985년 농업에 대한 환경보전직불제도(ESA)가 도입되고 오염방지, 경관 보전, 생물다양성 유지, 자연보전을 위한 지원이 정책의 중심을 이루게 됐다.

이후 CAP는 농업의 근원적인 목적인 안정적 식량확보보다는 영농여건 안정적 유지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2013년 대대적인 개혁이 이뤄졌다. 이와 함께 농업생산이 환경을 보전하면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인식과 기후변화 대응 능력도 제고돼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이 개혁 추진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적용되는 CAP 개혁안은 직불제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정책목표에 따라 기본직불제, 젊은 농가 지원 직불제, 녹색화 직불제, 자연적 제약에 대한 직불제, 소규모 농가 지원 직불제 등 다양한 직불제 형태로 마련됐다.

이 가운데 기본직불제는 농가 소득 유지와 식량의 안정적 생산 추구 목적이 크며 녹색화 직불제는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업의 환경적 성과 제고를 위해 도입됐다.

특히 CAP는 공공재를 생산하는 대가 또는 공공재를 보다 효과적으로 생산토록 하기위한 농업에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 전환을 이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미국-“경작지·습지보호 등 환경보전 농업법 준수 의무화”

▲ 미국에서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정책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않지만 농업자원, 환경보호를 중심으로 농업 정책을 펼쳐 나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보호수준이 낮은 국가들은 다원적 기능을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지만 이와 관련해 생산이나 무역과 관련된 정책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미국에서는 여전히 다원적 기능이라는 개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정책에서도 명시적으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 다만 농업 관련 조항을 헌법적으로 수용하고 있지 않지만 주요 농업정책은 연방법인 농업법(Farm Bill)을 개정, 환경 보전을 중심으로 농업자원, 환경보호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주(state) 차원에서 각자의 개별 주법을 통해 농업 관련 조항을 두고 있다.

1985년 미국은 농업법에 의해 환경보전에 중점을 두는 저투입 지속가능 농업(LISA)에 대한 지원이 시작됐다. 그 일환으로 미국 환경보전정책의 핵심인 보전유보제도를 도입, 환경적으로 민감한 농지를 10~15년간 휴경하는 경우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토록 했다.

또한 미국 농업법에 따르면 농가가 농업정책에 대한 수혜를 받기 위해서는 경작지보호, 습지보호 등 환경보전 의무 조항의 준수 의무화가 뒤따른다. 이는 1985년 첫 도입이후 지금까지 계속 시행되고 있다.

이처럼 미국 농업법에서는 농업자원 및 환경보호 프로그램을 하나의 주요 농업정책 사업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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