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계 "예정된 실패"
1조원은 방대한 꿈…지금까지 300만원 조성

FTA(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한 피해보전을 위해 입법 발의,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FTA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하 상생협력기금). 법안이 통과돼 실행단계에 들어갔지만 애초 1000억원씩 10년간에 거쳐 1조원을 조성키로 했던 방대한 꿈과는 달리 현재까지 농업 관련 국회의원, 농민단체에서 기부해 총 300만원이라는 초라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기금조성 방법이 강제성이 없고 실제 정부 등에서 기업체에 요청하는 것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돼 있어 실행에 한계가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농업계 일각에서는 상생협력기금이 농업에 대한 국민들의 동냥의식만 자아낼 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아 아예 이 법안을 폐기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시각마저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지지부진한 FTA농어촌상생기금을 진단한다. [편집자 주]

 

상생협력기금은 ‘FTA(자유무역협정) 무역이득공유제’의 실제 시행 가능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대기업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자 그 대안으로 합의된 사안이다.

무역이득공유제는 홍문표 의원(자유한국, 홍성·예산)이 2012년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것이 근간이다. 무역이득공유제란 정부가 FTA 이행으로 혜택을 누리는 산업 분야의 이득이 농어업 분야의 막대한 규모의 피해와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당시 무역이득공유제의 재원 마련 방법으로 수출산업에 대한 목적세 부과, 법인세 1% 적립 등이 거론됐고, 국내 농업에 한·중 FTA가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도입을 촉구하는 농업계 목소리가 컸지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에 그쳤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가 현실성이 적고 위헌 가능성이 크다며 회의적 입장을 피력하고 재계가 반발했기 때문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차원에서 ‘무역이득공유제의 조속한 도입을 위한 촉구 결의문’까지 채택했지만 법제화 과정은 지난하기만 했다.

이처럼 무역이득공유제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다, 2015년 11월 30일 한·중 FTA 여·야·정 합의로 기업 등의 기부금을 통해 농어업과의 상생협력·지원을 위한 기금을 무역이득공유제 대안으로 조성키로 했다.

그럼에도 재계의 반발로 상생협력기금 신설을 위한 관련 3개 법률 개정안이 부침을 겪다 지난해 12월에 이르러서야 통과했다. 관련 법안의 본회의 통과로 민간 기업 등이 농어업·농어촌을 상생협력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총 1조원의 민간기부금을 재원으로 상생기금을 설치하고, 목표액 미달 시에는 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에 따라 상생협력기금 운영을 위한 전담 조직·인력이 구축, 지난 3월 30일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내 ‘농어촌 상생협력기금 운영본부’가 출범했다. 당시 운영본부는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을 중심으로 상생협력기금이 농어업·농어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민간기업 등과의 상생협력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원활히 정착·운영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운영본부의 포부와는 달리 현재 상생협력기금 조성 실적은 초라하다. 관련 법안이 통과되고 상생협력기금 운영 전담조직이 꾸려지는 등 상생협력기금의 돛은 올랐지만, 당초 기금 조성에 부정적이었던 재계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외부 기부금 출연에 소극·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어서다. 이에 지난 24일 기준 조성된 기금은 고작 300만원에 그치고 있다. 이마저도 농해수위원인 김종회·황주홍 의원과 (사)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각각 100만원씩 기부한 데 따른 것이다.

상생협력기금에 대한 재계의 참여의지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부와 국회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6월 인사청문회 당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연 실적 부진과 관련해 “현재 정부가 기금 모금에 나서면 위법이라고 돼 있는데 관련법을 완화해서라도 별도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홍문표 의원도 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밝히면서도 “상생협력기금을 활성화하기 위한 몇 가지 안을 구상 중”이라며 “상생협력기금은 그동안 굵직굵직한 정치적 이슈에 묻혀 조성의 현실화에 애로가 있었는데, 기업에 공문을 보내는 것 등을 포함해 여러 안을 조만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권 의원(더불어민주, 비례)은 “한·중 FTA로 인한 농업 분야 피해에 직접 지원을 하는 대신, 19대 국회서 당시 여당 주도로 상생협력기금 관련법이 강제력이 없는 두루뭉술한 상생의 형태로 구색만 갖춰놓은 채 통과된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았다”며 “현재 실효성 논란이 빚어진 것은 사실상 예견된 것으로 정치권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니 만큼 정치적으로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농민단체들은 기금조성부터 운용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는 농어촌상생기금을 두고 ‘예정된 실패’라고 힐난하며 법제화를 통한 강제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FTA에 따른 농업계 피해를 대충 무마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져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며 “대기업, 재벌 등의 세금을 늘려 농업 예산으로 확충해 활용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정현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정책연구실장은 “민간세제 혜택을 준다고 했지만 강제성이 없어 민간차원의 참여 없이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크다”며 “목표했던 기금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국회와 정부가 합의한 약속인 만큼 부족분에 대해서 정부에서 보전해줘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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