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식 피해 '불 보듯'
계약재배 판로 차단·가공공장 폐업 우려

▲ 지역농협 김치가공공장이 가동중단 위기에 처하면서 국산 농산물 소비,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브레이크가 걸리게 됐다.

“지역농협이 생산하는 김치를 학교급식이나 군납 등 단체급식용으로 납품하는 사업은 농업협동조합 목적과 가장 합치되는 사업입니다. 계약재배와 가공·판매를 통해 농업인들의 안정적인 판로를 만들어줘 영농에 안정적으로 종사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지역농협의 김치사업이 지역 농가의 소득안정망 역할을 해왔는데 이 사업을 차단하면 지역 농업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조속한 법 개정 등 선제적 대책이 절실합니다.”

이우복 경기농협식품 조합공동사업법인(이하 경기식품조공법인) 대표이사는 어두운 얼굴빛으로 이 같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달 30일 경기식품조공법인을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가공공장 문 닫을 위기

경기식품조공법인 등 지역농협은 그동안 제한적으로 중소기업 지위를 인정받아 공공기관 입찰을 통해 김치를 납품해 왔다. 하지만 중소벤처기업부가 관련 근거조항이 2015년 말 일몰·폐지됐다는 이유로 ‘직접생산확인증명서’ 발급대상에서 지역농협을 지난해부터 배제해 경영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특히 경기식품조공법인의 직접생산확인증명서 유효기간은 내년 5월까지였지만, 직접생산확인증명서를 발행하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7월 공문을 보내 직접생산확인증명을 취소했다.

연천과 파주·화성지역 3개 농협 김치가공공장이 통합한 경기식품조공법인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경기식품조공법인의 총 매출액은 349억5600만원 중 학교급식 매출은 161억8500만원으로 비율만도 46.6%에 달한다.

단체급식 납품 중단은 올해부터 가시화됐다. 지난 7월 서울 성동구 등 2곳에서 급식 납품 김치업체 선정을 위한 마지막 절차인 품평회에서 직접생산확인증명서를 이유로 탈락했다. 또한 학교급식의 내년도 사업자 선정도 오는 11월으로 눈 앞에 닥쳤다. 이에 농협에서는 지역농협 김치가공공장의 중소기업 지위 인정과 제도적 보장을 위한 농협법 개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개정이 빠르게 이뤄지더라도 단체급식 사업자 선정 시기와 맞물리거나 늦어질 수 있는 만큼 직접 납품 외 대안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단체급식 납품 중단으로 경기식품조공법인의 세 개 공장 중 최소 한 곳 이상이 문을 닫을 것으로 보여 공장과 영업소 직원 등 350여명이 직장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경기식품조공법인의 경우 세 개 공장을 모두 합쳐도 총 매출액은 300억원대로 중소기업 요건인 식료품 제조 1000억원 이하에도 훨씬 못 미치는데도 중소기업으로 간주받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말했다.

#채소류 농가 손실 가시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100% 국산 원료만 사용해 생산하는 농협김치가 단체급식에서 배제되면 채소류 농가들의 경제적 손실도 가시화된다. 지난해 경기식품조공법인이 조달한 김치 원재료 물량은 1만6154톤으로 146억3100만원에 달한다.

김동언 경기식품조공법인 부장은 “농협김치는 100% 국내산 원료로 사용해 만들고 농가소득을 보장하는 수준에서 원재료를 구매하고 있어 공급가격이 높은 편”이라며 “김치 자체가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이 아닌데다, 전체 매출에서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단체급식에서 배제되면 가공공장이 타격을 입고 계약재배하는 채소류 재배농가들의 판로도 막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 파주시에서 시설하우스 1만3223㎡(약 4000평)에서 채소류를 재배 중인 박희호(60) 씨도 근심이 가득하다. 경기식품조공법인에 21년째 계약재배로 연중 배추 50톤, 알타리 무 30톤, 열무 15톤 가량을 납품해 왔는데 판로가 막히게 생겨서다.

박 씨는 “경기식품조공법인 공장에 공급하던 군납이 중단돼 이 물량을 단체급식으로 전환했는데 이마저도 중단되면 70~80%에 달하는 손해를 입게 된다”며 “농협김치가 단체급식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 사실상 판로가 막히는 셈이어서 수십년 해 온 농사를 접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고 토로했다.

윤영문 경기식품조공법인 학교급식팀장은 “학교급식 납품을 해야 김치 원재료를 많이, 안정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며 “지역 단위농협에서 농업인이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하는 것을 막아 가공공장 뿐 아니라 농가에까지 피해를 전가시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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