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청탁금지법 사실상 추석 전 개정불가
명절 선물소비 평년대비 20~50% 감소

청탁금지법 개정에 대한 농축산업계의 강력한 요구에 더불어 정부·정치권에서도 추석 전에 법 개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지만 현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치닫고 말았다. 결국 농축산업계는 지난 설에 이어 올해 추석 역시 명절 특수가 실종된 채로 보내야 하는 허탈감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추석맞이 농축수산물 직거래장터에서 “청탁금지법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농축산물 판매 위축으로 이어져 법 개정을 통해 올해 추석부터라도 회복되도록 하자는 요구가 정부 안에서도 있었지만 이를 반대하는 측의 영향으로 실행하지 못했다”며 “정부는 연말 안으로 청탁금지법에 대한 영향평가를 통해 다가오는 설에는 농업인의 어려움을 덜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올 추석 전 법 개정 불가를 못 박았다.

추석 전 청탁금지법 개정에 기대를 걸었던 한우농가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한우 도매가격은 지난 18일 1등급 kg당 기준 1만7806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청탁금지법 시행 전인 지난해 추석 한우 1등급 도매가격이 2만원대까지 올랐던 것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낮은 가격이다.

이같이 청탁금지법으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심화됨에 따라 전국한우협회는 청와대 앞에서 추석 전 청탁금지법 개정을 요구하는 집회와 1인 시위에까지 나섰지만 결국 개정이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와 관련 김영원 한우협회 국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청탁금지법 개정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바 있고, 현 정부의 여러 인사들이 청탁금지법 개정에 대해 지속적으로 언급하면서 농업인들은 추석 전 청탁금지법이 개정될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아 허탈한 심정”이라며 “농업인들이 청탁금지법 개정이 절실한 만큼 현 정치권에서는 한번 내뱉은 말에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대형유통업체,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 전국의 공영농수산물 유통인들에 따르면 추석 명절 선물 소비는 평년 대비 최소 20%에서 최대 50%까지 감소했다.

평년 같으면 택배로 보낼 선물세트의 주문이 쇄도해야 하지만 중도매인 점포는 한산하다. 이 때문에 점포에는 낙찰 받는 과일의 재고가 쌓이고 있다. 중도매인들은 “지난 설 선물소비 감소폭이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갈수록 소비가 침체되고 있다”며 “명절을 앞두고 실제 차례상에 올릴 정도의 물량만 구입할 뿐 선물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은 찾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지방도매시장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전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의 한 중도매인은 “명절에 과일을 선물하기 위해 전화로 문의하는 소비자들은 드물다”며 “청탁금지법 시행 전과 비교하면 선물매출이 50%까지 감소했다”고 탄식했다.

대형유통업체들은 명절 2~3일전 차례상용 과일과 나물, 채소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반면 가장 큰 매출인 선물매출은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마저도 간소화하려는 소비자가 많아 사과·배는 5개에서 3개로, 생선도 3마리에서 1마리로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대형유통업체 관계자는 “지인끼리도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꺼리고 마치 선물을 하려고 주소를 물어보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며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과일 재배 농업인들이 재배를 포기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농업인 단체에서는 실망을 전하며 청탁금지법에서 농수축산물을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더욱 강력하게 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홍기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청탁금지법이 농업계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드러났는데도 조속히 개정하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농축산업계가 청탁금지법 대상에서 농축수산물이 제외돼야 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개정이 미뤄지는 것은 농업에 대한 홀대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꼬집었다.

이어 이 회장은 “청탁금지법 관련 토론회 등을 통해 농업계의 의견을 강력하게 전하고,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정부의 확답을 듣겠다”고 덧붙였다.

농협 품목별전국협의회는 이제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 중 농축수산물을 제외하겠다는 농정공약을 실행으로 보여야 할 때라는 것이다.

배수동 농협 품목별전국협의회 의장은 “농업인을 죽이는 악법인 청탁금지법 개정에는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만큼 더 큰 피해가 양산되기 전에 대통령이 여야의 공감대 형성을 통한 개정 노력에 앞장서야 한다”며 “올해 농업은 기상이변으로 인한 우박피해와 농자재 가격 폭등, 수입 농산물 활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청탁금지법으로 인한 추석 선물수요 감소까지 겹치면 가격이 반토막 나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업인이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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