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서울대 교수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북방에서 철새가 날아오고 있고, 비록 저병원성이지만 H7이나 H5형의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분리되기 시작하고 있다.

2016~17년 발생한 고병원성 AI로 인해 거의 4000만마리에 이르는 가금류가 살처분 된 이후 조기근절도 중요하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살처분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의례적 방법 말고, 근본적 해결책은 없는가? 더 지혜로운 방안은 없는가? 청정국으로 가야만 하는가? 청정국이 안돼도 후진국처럼 백신접종을 하면 무더기 살처분은 피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럴 경우 인체 감염 위험성은 어떻게 되나?

여러 쟁점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9일 개최된 농식품부 주관의 ‘AI 항원뱅크 비축 및 백신접종 시스템 구축방안 공청회’에서도 여러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제 근본원인으로 돌아가 보자. 대량 살처분의 1차적 원인은 지자체의 방역시스템이 여러 이유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산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또한 수십만 마리 규모의 대단위 산란계 농장들이 계란 수송차량에 의해 거의 무방비상태에서 AI에 당했다는 것이 두 번째 원인이다. 30%가 넘는 산란계농장에서 살처분이 이뤄졌다. 계란 운반시 필요한 합판이나 팔렛트 같은 도구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여러 건 분리되기도 했다. 세 번째는 여전히 철새 도래지 주변의 오리사육농가에 대한 효과적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발생신고 기피 등 사육농가의 도덕적 해이도 AI 피해 증폭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방역상의 허점과 근본적 문제점에 대한 개선이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한다. 백신접종으로만 살처분 사태를 해결하려 한다면 후진국과 다를 바 없고, 우리나라가 AI 발생 상재국(연중 발생국)으로 전락하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물론 AI 백신을 접종하면, 감염되어도 임상증상이나 폐사가 획기적으로 줄고, 살처분마릿수도 극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중국이나 동남아 같은 AI 상재국에서는 가금류에서의 AI 발생을 낮춰 인체 감염까지 줄일 수 있다. 

백신접종에 의한 여러 장점이 많기 때문에 OIE(세계동물보건기구) 등 국제기구에서도 근절이 불가능한 상재국은 대안으로써 백신을 사용하도록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백신을 접종하면 증상이 약하거나 없기 때문에 농장에서 방역당국에 AI 발생신고를 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감염농장을 색출하는 작업에 방역당국이 온 힘을 쏟아야 한다.감염농장으로부터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오염된 가금육이나 계란이 출하돼 우리의 식탁에까지 오를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국민들은 과연 이 위험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심각하게 해야 한다. 또한 AI 백신을 접종하면, 현재 구제역 사례에서 보듯이 근절이 어렵거나 지연되고, 상재화된 상태에서 새로운 유형의 AI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면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후진국 발생유형과 동일하다. 그 와중에 재래시장과 같은 사각지대에서는 인체 감염이 발생할 수도 있고, 이 부분이 전문가나 보건당국에서 인체감염의 잠재적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우려하는 이유이다.

비상 대비 백신 확보와 정책의 준비는 긴요하지만, 백신을 사용하지 않고 방역상의 허점을 철저히 보완해서 소수의 살처분만으로 조기근절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정답일 것이다. AI 청정국이라면 농장 방역이나 인체감염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근본적 해결책을 적용하더라도 허점이 많거나 현장에서 제대로 방역원칙이 준수되지 않으면 근절 노력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AI 예방과 조기근절을 위한 우리만의 왕도는 따로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기본수칙을 충실히 준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작권자 © 농수축산신문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