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뭄이 심한 해로 기억된다. 극심했던 봄가뭄에 이어 현재 진행 중인 가을가뭄도 심하다. 하지만 시계추를 지난 여름으로 돌리면 가뭄이 아니라 장마가 지긋지긋했다. 그것도 중부지방에서만. 가뭄과 장마라는 극단적인 기상상황을 보여준 게 올해가 아닐까? 바로 극심한 기후변화이다.

강원도 양양군에 귀농한 김 모 씨는 이달 초순 수확기를 맞아 들깨밭을 갈아엎었다. 들깨가 여물지 않는 쭉정이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일조량 부족이었다고 한다. 지난 여름 내내 이어진 긴긴 장마로 일조량이 부족했고, 그 결과 들깨가 제대로 여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김 모 씨만이 들깨농사를 망친 것은 아니다. 그늘이 일찍 드는 밭에서 들깨농사를 지은 이웃들도 모두 쭉정이 농사를 지었다.

경북 영덕군에서 농사를 짓는 정 모 씨도 마찬가지였다. 파종기 가뭄으로 들깨모종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몇 차례나 들깨모종을 붓는 수고를 거쳤는데도.......

기후변화가 가져온 암담한 결과다. 농산물가격이 폭락해 농작물을 통째로 갈아엎는 일은 종종 있어 왔다. 수급을 맞추기 위해 밭을 갈아엎기도 했고, 수확하는 비용도 건질 수 없어 농작물을 갈아엎기도 했다. 기상재해로 농사를 망치는 경우도 있었다. 1980년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냉해로 벼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농사를 망치는 혹독한 경험을 치렀다. 이제는 기후변화로 농사를 망치는 일까지 현실화됐다. 올해 탄저병으로 큰 피해를 입은 사과와 고추 역시 지난 여름 이어진 긴긴 장마라는 기후변화 영향 때문이다.

사실 우리 농업은 그동안 기후변화 덕을 봐왔다. 과일재배가 강원도까지 가능해진 것은 재배기술 발달보다는 지구온난화 영향이다. 기후온난화 영향으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사과재배 적지가 강원도 양구군까지 북상을 했다. 그 결과 종전 사과재배 농가들은 설자리가 약해졌지만, 우리 농업 전체로 보면 재배작목이 다양해지는 등 실보다는 득이 많았다. 열대작물 재배가 가능해지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앞으로는 득보다 실이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지구온난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우세하다. 2050년이면 지구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2℃ 상승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올해처럼 가뭄이 기승을 떨치다가 긴 장마가 이어지고, 다시 가뭄이 심각한 상황을 보이는 기후변화현상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예고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미치는 심각성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공감을 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논의하는 자리에 가면 이보다 더 시급하고 심각하고 중차대한 일은 없다는데 모두가 공감을 한다.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막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1)가 2주간에 걸친 협상 끝에 12월 12일 2020년 이후의 새 기후변화체제 수립을 위한 최종 합의문인 ‘파리협정’을 최종 채택했다. 그때만 해도 국내외적으로 관심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후변화대책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순한 온실가스감축 문제가 아니다. 농업현장은 기후변화로 이미 피해가 늘고 있다. 때마침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업개혁위원회를 가동해 문재인 정부의 농정방향을 짜는 작업에 나섰다. 그동안 우선순위에서 계속 뒤로 밀리기만 한 기후변화대책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는 농업에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앞으로 피해는 더욱 더 커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기후변화대책은 문재인 정부 농정로드맵에서 우선 순위에 자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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