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구 동국대 교수

대형유통자본의 소비지시장에 대한 지배력 강화는 필연적으로 유통 주체간의지배력 구조의 재편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과거 위탁상이 중심적인 지배력을 형성하고 있던 시기에는, 위탁상이 농산물유통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유통상의 모든 리스크가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양방향으로 전가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형자본을 앞세운 대형유통업체가 농산물 시장 특히 소비지 농산물시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부터는 리스크 회피 방식이 생산자에게로 집중되는 일방향적 하방 전가 경향을 보이고 있다. 즉 대형 유통자본에서 중소 유통자본을 거쳐 모든 리스크가 산지 생산자에게로 집중되는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체 농산물 유통 시스템상으로는 대형유통업체의 점포 진출이 한계에 봉착하고, 대형유통업체간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됨으로써 소비자가격이 일정한 고정적 성격의 가격추세로 형성되고 있다. 이 가운데 대형유통업체, 도매시장 내 중도매인, 납품업자(벤더), 생산자 등이 자기 지분을 상대적으로 많이 확보하기 위한 파워게임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자본이 영세할수록 파워게임에 밀리게 되고 결국은 가장 힘이 약한 농업인이 모든 리스크를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현재의 농산물 유통시스템의 일반적인 내용과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농업인이 만들어낸 가치에서 농민의 몫이 가장 작아지는 모순된 현실이 고착화돼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생산자들에 의한 산지조직화의 발전과 확산이다.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산지조직화사업은 조직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양적 성장이라는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의 질적 성장 즉 내실화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소비지시장에 대한 조직적 대응 능력 부족, 마케팅파워를 통한 농산물 출하구조의 미비, 가격발견 생성 기능 부재 등 시장에 대한 주도적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소비지시장의 변화에 대한 산지의 조직적 대응력은 매우 취약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산지와 소비지간의 합리적 균형을 모색하기 위한 중간자로서의 공영도매시장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측면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산지가 조직적 변화를 통해서 소비지에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할 때까지 대행판매를 통한 마케팅파워의 유지, 투명성·공정성·합리성의 거래시스템이라는 공영도매시장의 기존의 역할과 기능은 물론이고 여기에 소비지 시장의 전문화·다양화·규모화라는 새로운 변화과정에 대해 동시에 대응해 나갈 필요성이 오히려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투명성·공정성·합리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4정(4定)등 새로운 소비지시장의 요구에 대응해 나가기 위한 정가·수의거래의 확대 및 활성화 노력, 소비지시장의 판매여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중도매인의 전문화·규모화·다양화 노력, 물류시스템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도매시장 내 물류시스템 및 시설의 정비 등이 당면한 현실 하에서 도매시장이 나아가야할 가장 합리적인 활성화방안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현재 도매시장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시장도매인제의 도입 문제나 상장예외품목의 확대 논란은 공영도매시장의 기능과 역할 강화라는 시대적 필요성과 당위성을 역행하는 무책임하고 논란의 여지가 매우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여기에 관리조직이 시대적 역행과 무책임한 무리수를 남발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시대역행적인 행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습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점에서 매우 우려되는 현실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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