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2003년 이후 7차례나 발생하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초창기부터 막심한 고생을 해 오고 있는 검역본부의 핵심 연구관 중 한 명은 아예 오리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나 AI가 지긋지긋하면 오리고기조차 멀리할까 싶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AI 박멸 때문에 가정을 소홀히 하다 보니 자식의 교육문제도 생겼단다. 남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어느 유선 TV 맛기행 프로그램인 ‘감탄식객’에 나오는 유명한 외국인 세프가 서울 근교의 등산로와 하산길의 풍성한 먹거리 문화를 취재한 적이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주제가 막걸리와 오리탕 요리였고, 등산 길 초입에서 한 단체에서 나누어 주는 수분 보충용 오이의 효용성에 대한 감탄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오리와 오이, 발음상 묘한 연동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산에 올라가 자연과 흠뻑 동화된 후 내려 오면서 길가에 배치된 압축공기 노즐을 통해 바지와 신발의 먼지를 털고, 산뜻한 몸과 마음으로 하산길에 즐비한 음식점 중 하나를 찾아 들어간다. 거기에는 운명처럼 오리탕 집이 빠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고유(?)의 코스 요리가 기다리고 있다. 우선, 다양한 곁반찬에 도토리묵 한 사발, 여기에 필수적인 막걸리 한 통으로 흥취의 서막을 올린다. 잔을 기울이며, 세상만사를 상위에 안주로 늘어놓다 보면, 오리 불고기가 다음 코스로 나오고 다시 주문하는 막걸리 한 통에 주흥은 익어간다. 마지막으로 오리탕이 나와 익을 때까지 대화의 잔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 새 한 두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결코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풍경이 아니다. 자연과 동료와 대화와 오리 요리에 취해 가는, 한 없이 느린 슬로우 시티의 풍경이며,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등산로 풍경이라고 한다. 

배 불리 즐기고, 혈색 좋은 얼굴로 하산하는 얼굴에서는 ‘빨리빨리’ 문화로 통하는 한국인의 고정관념은 적어도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그저 일장춘몽일 뿐이다. 흔히, ‘빨리빨리’ 문화를 조급한 국민성과 현대화 과정의 어두운 단면을 부각시키는, 스스로의 비하에 연관시키는 일이 많은데 이 문화야말로 산업혁명은 물론 지금 거론되고 있는 4차산업 혁명까지 선진국이 수백년 걸려 달성한 문명의 발달을 60년대 이후 불과 반세기만에 이루어 낸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조급한 마음이 들면 산에 올라가고, 하산길에서 느긋하게 즐기고 오면 될 일이지 우리 고유의 덕목을 쉽게 버릴 일은 아니다.

프랑스 파리에 가면 일반적인 레스토랑의 메인 요리로서 오리다리 스테이크 요리가 흔히 나온다. 다리 하나가 통째로 나오거나 횡단면으로 잘라 대퇴골 뼈가 있는 부분이 동그랗게 비어 겸손해 보이기까지 하는 타원형의 작은 도넛 모양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여간해서는 오리고기 요리를 찾기가 어렵다. 교토의 한 호텔에서 겨우 오리고기를 찾아 시켰다가 맛이 없어 금방 후회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아예 오리고기 요리 자체를 찾지 않으며, 오리 사육산업이 미미한 이유이다. 우리 국민들은 오리고기를 건강식이라 하여 많이 즐기고, 실제로 육류 중 불포화 지방산 함량도 제일 낮다. 그러다 보니 1990년대 말부터 국내 오리산업 규모가 폭증했고, AI에 취약한 국내 가금산업 구조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산업적 배경이 AI 유입시 확산과 피해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며, 사육밀도가 높을수록 전염병의 전파 확산은 심화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계속 오리고기를 즐기고 싶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오리산업 구조와 사육형태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오이를 재배하다가 그 비닐하우스에서 오리를 키운다는 말이 유행한 것은 그만큼 우리의 오리사육 산업이 열악하고, 지역사회나 친지 위주로 사육업이 구성되는, 방역개념이 많이 부족한 형태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더 이상 구조조정을 미루면 국민의 건강이 볼모로 잡히게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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