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두 건국대 교수

1980년대와 3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난 오늘날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의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농업인들이 스마트폰으로 필요한 정보를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 올 줄 30년 전에는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바로 도매시장의 거래제도이다. 1976년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하 농안법)을 제정하면서 산지 출하자(생산자)와 소비지의 도매상인 사이에 유통단계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도매시장법인이라는 별도의 주체를 개입시킨 것은, 당시 출하자들이 거래정보나 교섭력 등에서 도매상인을 직접 상대할 능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도매시장법인을 일종의 출하자의 보호자로서 내세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통신수단의 획기적인 발달로 해남 땅끝마을이나 강원도 오지에서도 실시간으로 소비지 시장가격을 누구나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지출하자들의 규모화·조직화로 거래교섭력도 상당부분 확보됐다.

그럼에도 왜 도매시장은 출하자들을 여전히 정보력과 시장교섭력이 없는 나약한 존재로 전제하고 30년 전과 똑같이 도매법인을 통해서만 농수산물을 도매시장에 출하토록 강요하고 있는가? 이것이 과연 진정으로 출하자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독점적 지위를 유지코자 하는 도매법인을 위한 것인지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경매제의 단점을 보완하고 도매법인과 경쟁체제를 도입해 출하자의 출하선택권을 확대키 위해 1994년 상장예외품목 제도를, 2000년에는 시장도매인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도매법인은 농안법 제31조(수탁판매의 원칙) 제1항에 따라 출하자로부터 위탁받은 농수산물을 상장해 중도매인 또는 매매참가인에게 도매거래를 할 수 있고, 중도매인은 제31조 제2항 단서조항에 따라 도매법인이 상장하기에 적합하지 아니한 농수산물과 그에 준하는 농수산물은 개설자의 허가를 받아 직접 출하자로부터 농수산물을 매수 또는 위탁받아 거래할 수 있다. 또한 시장도매인은 제37조(시장도매인의 영업)에 따라 출하자로부터 모든 농수산물을 매수 또는 위탁받아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도매시장에 대한 정부정책 방향과 많은 유통전문 학자들이 도매시장의 활성화 방안으로 정가·수의거래의 확대가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가·수의거래 확대 방법론에 있어서 도매법인만 그 주체가 돼야 한다는 주장과 시장도매인이나 상장예외품목 취급 중도매인까지 그 주체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도매법인만 정가·수의거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주장은 시장도매인이나 상장예외 중도매인의 경우 거래의 투명성·공정성·합리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시장도매인제 도입이나 상장예외품목 확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도매시장 내 유통주체간 건전한 경쟁여건을 조성하고 출하자가 본인의 판단에 따라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하자 입장에서 보면 본인의 교섭능력, 품질, 수량 등을 감안, 도매법인을 통해서 수의매매를 할 수 있고 아니면 직접 시장도매인과 수의매매를 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정가수의거래 확대가 도매시장 활성화 및 농수산물 유통 효율화를 위한 중요한 방안이라는 점에는 100% 공감하지만 그 주체를 도매법인으로 한정해야 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출하처 선택의 주체는 출하자이기 때문이다.

도매법인의 정가·수의거래 확대를 보다 촉진시키고 출하자에 대한 서비스 향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시장도매인제 확대도입이나 상장예외품목 확대 등 유통주체간의 건전한 경쟁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건전한 경쟁을 통해 발전적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현 시대에서 변화를 외면하고 기득권만을 고수하는 것은 공존이 아닌 공멸로 귀결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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