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선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

어선어업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직군의 하나다.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매년 1000건 이상, 하루도 빠짐없이 어선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충분히 실감 할 수 있다. 그래서 어선사고 및 재해 예방과 대응 등 어선안전관리는 지나침이 없는 일이다. 오히려 좀 더 다각적으로 어선안전관리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추진 중인 어선현대화도 새로운 어업안전관리 방안의 한 가지로 검토 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연근해에서 발생하는 어선사고 유형은 기관고장, 화재 및 전복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문제가 어선노후화 심화와 어획능력 제고를 위한 불법증개축에 따른 어선의 기형적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열악한 어선의 작업환경으로 말미암아 내국인 어선원들이 승선을 기피하고 외국인 선원으로 대체됐다. 그런데 만일 어선의 작업 환경이 현재와 같이 유지된다면 아마도 몇 년 이내에 외국인 선원도 구하기 어려워 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업종에서는 이미 이러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따라서 어업 안전과 정상화를 위해서는 어선을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장으로 빨리 전환해야한다. 다시 말해서 선형과 설비뿐만 아니라 선원의 휴식 공간이 마련된 안전한 구조를 가진 어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어획과 어획능력 향상에 집중된 어선의 구조를 사고를 예방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첨단 안전설비와 선원들의 휴식공간을 갖춘 구조로 변경해야한다.

어업인이나 관계자 모두 이러한 필요성을 공감함에 따라 몇 년 전부터 해양수산부에서는 어선원의 안전과 복지 향상을 위한 어선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자금조달과 어선크기 제한 등이 사업 추진의 걸림돌로 작용해 아직까지 어선현대화 사업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어업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제는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 방향이 필요하다. 특히 자금 조달과 관련해서 정부의 지원에 대한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경영주가 어선원의 안전과 복지 향상을 위해서 어선에 선뜻 큰 돈을 투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타 산업에서도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근로자의 안전과 복지 향상과 관련한 사항에 대해서는 국가가 나서고 있다.

어선현대화도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세부 내용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국민의 안전과 복지 향상차원에서 어선현대화 사업을 지원하는 것을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명확히 설정해야한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스페인의 경우 어선원의 안전·복지 향상을 위해 정부가 어선현대화 사업을 지원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선을 선체와 장비로 분리해서 선체에 대해서는 에너지 절감 연구개발(R&D) 지원 이외의 금전적 지원은 전혀 하지 않는 반면 안전과 복지 관련 장비와 설비에 대해서는 보조금과 정책금융 지원을 하고 있다. 검토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사례다. 한편 어선원의 휴식 공간을 확보하면 어선의 규모는 현재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근해 어선의 크기는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어선의 톤수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지 않고는 어선의 복지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어선현대화 사업 추진에 우선해 선원 안전과 복지 공간은 어선의 톤수 규제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시범사업을 추진 중인 길이기준 어선등록 제도를 면밀히 검토하고 보완하여 시행해야 한다.

최근 국제적으로 Fish Welfare(물고기 복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어선의 선원 안전과 복지 공간 실태와 비교해 보면 매우 관계자의 한 사람으로 매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선이 도시의 첨단 스마트 빌딩 사무실과 같지는 않아도 더 이상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곳은 아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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