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

1970대에 유행하던 개그 중에 ‘개망신’이 뭐냐는 우스개가 있다. 사람이 개에 물렸을 때나 엄청나게 큰 망신을 당했을 때가 아니라, ‘개가 사람한테 물렸을 때를 개망신이라고 한다’가 정답이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깊은 뜻은 없었겠지만, 지금은 개의 위상이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그만큼 올라가 있으니까 새로운 시대적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과거에는 우리 민족이 개나 애완동물을 천시했기 때문에 개와 관련된 비속어나 욕이 셀 수 없이 많지만 ‘개’가 접두어로 붙어 표준어가 되는 것도 있다. ‘야생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 이란 의미의 개살구, 개떡을 들 수 있고, ‘헛된, 쓸데없는’이란 뜻의 개소리, 개꿈, ‘아주, 정도가 심한’이란 의미를 나타내는 개쪽, 개판, 개폼 등 유독 언어에서는 개의 수난이 심하다.

SNS 문화가 발달하면서 개가 반려동물로서 위상이 올라가 있는데도 오히려 청소년을 중심으로 ‘아주’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어로써 개가 들어가는 표현이 점점 더 비속화되고 있으며, 개웃겨, 개좋아 등 말도 안되는 표현으로 개의 위상을 희화화하고 있다. 혹자는 단절과 증오 또는 너와 다르다가 아닌 너와 나는 틀리다라는 사회적 인식의 발로라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지나친 감정을 격하게 표현해야 통쾌함과 동질감을 느끼는 어긋난 카타르시스 과정이 아닌가 싶다.

동물학대가 큰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지 오래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과잉보호나 잘못된 복지 개념이 동물에 대한 독으로 작용하는 사례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어린아이에 대한 과보호가 아이의 올바른 사회적 성장을 망치듯이, 동물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 등의 국제기구나 동물애호가들은 동물복지를 논할 때 흔히 동물의 5대 자유를 들고 있다. 즉, 배고픔, 갈증 및 영양불량으로부터의 자유, 불안과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정상적 행동을 표현할 자유, 통증과 상해,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가 그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개념을 기본으로 해서 인간애의 정신으로 동물의 입장을 배려하자는 뜻이지 교조적인 잣대로 이 5대 자유를 금과옥조처럼 되뇌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배고픔이나 영양불량은 인류사회에도 있고, 불안과 스트레스 또한 현대인이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이며, 막돼먹은 행동이 아닌 절제된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또한 통증과 상해, 질병, 불편 등은 사람에서도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학대하지 말고,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최대한 편안한 여건을 조성해 주되 야생동물의 습성을 드러내도록 기르거나 서열을 거꾸로 알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동물행동학자들의 상식이다. 동물도 교육이 필요하며, 때리거나 혼내서 하는 것보다 먹이나 사료 등 달콤한 인센티브로 길들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만 때로는 물리력이 필요할 때도 있음을 인정한다.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는 동물은 영혼없는 기계라고 했지만 그 당시에는 동물의 내면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나 연구가 거의 없을 때이다. 

산업동물(농장동물)은 집단으로 사육하기 때문에 동물복지 차원에서 가장 수준이 낮은 영역이다. 그러나 산업동물은 경제적 이익이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절대적 동물복지란 성립하기 어렵다. 경제적 이익과 최대한 절충점을 찾되 살아있을 동안에는 동물의 입장에서도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자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사육 면적은 지엽적인 문제의 하나일 뿐이다. 산업이 수용할 수 있는 속도와 정도로 조율이 필요하지만 정부나 시민단체에서는 생산자 단체를 함께 가도록 설득하고 독려하는 절차가 더욱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중장기적인 동물복지 로드맵을 제시하고, 생산자들이 이에 적극 대비하도록 협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하듯이 매도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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