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생산조정제 신청이 부진하다고 한다.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올해 생산조정 목표는 논 5만ha이다. 공급과잉인 쌀 생산량을 줄여 수급과 쌀값을 안정시키자는 게 쌀생산조정제이다. 지난 20일 현재 생산조정신청 면적은 1만1680ha로 목표대비 23.3%에 그치고 있다. 하락하기만 하던 쌀값이 지난해 수확철 정부의 선제적 시장격리 등 강력한 대책으로 가파른 오름세를 타자 쌀농가들이 쌀생산조정제를 외면한 결과이다.

올해 정부가 쌀생산조정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농업계에서는 2016년산 쌀값이 수확기에 80kg 기준 13만원 아래로 폭락사태를 보이자, 이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2017년 예산에 반영해줄 것을 당국에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예산당국은 ‘2003년부터 3년간 시행해본 결과 이미 실패한 제도로 판명이 났다’는 반응을 보이며 반대했다. 하지만 2016년산 쌀값이 2017년에도 계속 하락세를 보이자, 예산당국도 어쩔 수 없었는지 쌀생산조정제가 올해부터 2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되게 됐다.

예산당국의 반대 속에 도입된 쌀생산조정제가 시행 첫해 반응이 부진하자 농림축산식품부는 비상이 걸렸다. 사업신청기한을 지난 2월 말일에서 4월 20일로 연장을 했다. 생산조정제에 참여한 농가가 생산한 콩을 정부가 전량수매하고, 조사료 판로를 보장하는 추가대책도 내놓았다. 지난 9일에는 쌀전업농가들과 성공결의대회를 갖기도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 같은 조치로 ‘신청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현장의 반응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다. 농업계가 쌀 수급과 가격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며 요구한 쌀생산조정제를 농가들은 왜 외면하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80kg 기준 13만원 밑으로 폭락했던 쌀값이 최근 17만원을 넘보는 수준으로 상황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쌀농가들이 경제논리 잣대로 볼 때, 올해는 쌀생산조정제에 참여를 하는 것보다 쌀농사를 짓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결과이다.

쌀생산조정제는 경제논리와 정치논리가 같이 녹아들어 만들어낸 제도이다. 반면 쌀재배농가들은 철저하게 경제논리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 쌀산업을 정치논리로 풀어야하는지, 경제논리로 풀어야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온 게 아닐까?

쌀대책은 그동안 정치논리가 앞섰다. 1990년 들어 쌀 공급과잉사태가 발생하자 쌀고품질화와 재배면적 줄이기, 쌀가공식품 개발 주장이 제기돼 일부는 정책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1994년과 1995년 잇단 가뭄으로 쌀독이 바닥을 들어내자 다시 증산정책이 시작됐다. 당시 농림부 내에서 이를 반대하는 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헬리콥터로 산골짝 다락논에까지 이앙기를 이송해 모내기를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식량안보라는 넘을 수 없는 선에 기대어 정치논리로 증산대책을 밀어붙인 결과 일어난 해프닝이 아니었을까. 그 후 풍흉에 따라 쌀은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신세를 반복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정치논리와 경제논리는 항상 부닥쳤다. 그리고 국내 쌀산업 자체도, 종사자도, 정책도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이게 국내 쌀산업의 기구한 운명인가?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에 좌우되는 게 정말로 운명일까?

“1990년 중반에 증산정책을 추진하지 말고 고품질화를 밀어붙였어야 했는데...” 퇴임한 어느 농정관료의 말이다. 우리 쌀산업은 상황변화에 따라 경제논리와 정치논리를 내세운 정책들이 번갈아 시행되면서 위기국면을 자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방향성을 제대로 잡고, 그에 따라 일관된 정책을 전개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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