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산 가금류 등의 수입위생조건’을 개정해 지역화를 인정하겠다는 것은 다른 국가에게도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의 원활한 타결을 위한 전지작업이 아니었냐는 의혹을 갖기에 충분하다.

3년여의 기간 미국 현지 상황을 조사한 결과, 문제가 없다는 판단아래 ‘지역화’를 인정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한미 FTA 개정협상 도중 이뤄졌다는 점에서 시기상 절묘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축산물 수입과 관련한 ‘지역화’ 인정 여부는 미국측이 11년전 한미 FTA 협상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사안이지만 우리 정부가 강력 거부해 실현되지 못한 터였다.

그동안 ‘축산물 수입 비관세 레드라인’으로 설정해 지역화 인정을 강력 저지해 왔던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FTA 재협상요구에 즈음해 현지 조사를 실시한 점과 재협상 합의도출에 임박해 ‘미국산 가금류 등의 수입위생조건’ 개정을 통해 지역화를 인정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이번 미국산 가금류에 대한 지역화 인정이 다른 나라의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 크게 해 주고 있다. 2016년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예비협상 단계에서 상대국들이 동·식물 검역과 관련해 지역화 전환을 강력 요구한 점을 상기해 볼 때 재발할 위험성이 있다.

우리나라와 이미 FTA를 체결한 52개 국을 비롯해 WTO 회원국 전체가 우리나라에 지역화를 요구할 경우 이를 거부할 명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산 가금류 등의 수입위생조건’을 통해 지역화를 인정하겠다는 정부 방침으로 인해 한미 FTA 재협상에서 농업부분의 ‘레드라인’을 지켜냈다는 정부의 발표가 무색해 질 수밖에 없다. 농업 분야의 추가 관세 인하, 저율관세쿼터(TRQ) 및 세이프가드(ASG) 조건 완화 등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협상 결과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미국산 가금류의 검사 및 검역과 관련해 지역화를 인정하는 것은 비관세 레드라인이 뚫려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산 가금산물 검사·검역 관련 ‘지역화’를 인정하겠다는 배경에 대한 정부측의 분명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미국산 가금산물에 대한 지역화가 다른 국가로 도미노처럼 번질 위험성에 대한 대책, 가금산물에 이어 돼지고기, 쇠고기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한미 FTA 재협상 합의는 끝이 아니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CP) 등을 비롯해 또 다른 FTA의 시작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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