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본 영남대 교수

이것도 직업병인지 어디서선가 누군가가 한 말씀을 부탁하면 마무리는 나도 모르게 어느덧 잔소리가 된다. 수일 전 원고청탁을 받고 어떤 글을 쓸 지 곰곰이 생각했던 결과도 결국은 잔소리로 마무리가 될 것 같다. 어차피 직업병이라고 필자 스스로 인정한 터이니 늘어가는 잔소리에 대한 독자의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리며, 한우산업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먼저, 한우 담당 공직자들의 전문성과 업무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싶다. 한우산업은 종합산업이기 때문에 한우라고 하는 생물은 물론 관련 산업들의 유기적인 특성과 시장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간 한우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들을 했지만, 2012년을 전후로 실시한 암소감축장려금지원사업과 2013년 FTA(자유무역협정) 폐업 지원 사업은 우리가 되짚어 보아야 할 사업들이다.

이 두 사업들은 201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발했던 구제역과 당시 300만 마리를 상회하던 사육마릿수가 배경이다. 이 두 사업의 결과로 한우사육농가와 사육마릿수가 일시적으로 줄었지만, 그 내막을 살펴보면 소규모 번식농가와 번식용 암소가 주를 이뤘다. 따라서 이 두 사업으로 인해 소규모 농가 위주의 한우 번식기반이 거의 붕괴됐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당시 폐업농가들 중 일부가 다시 비육용 밑소를 입식하면서 2018년 2분기 현재 송아지 가격은 지속적인 강세를 나타내고, 전문기관에서는 2019년을 전후해 사육마릿수가 다시 300만 마리로 회복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교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교훈거리가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바로 한우 육질등급기준 개선(안)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이 (안)은 2010년에 한우 사육기간을 단축시킬 목적으로 육량지수 산출식을 변경한 것이 시작이다. 그러나 산출식 변경에도 불구하고 사육기간은 단축되지 않고, C등급 출현율만 증가했으며, 그 후속 조치로 근내지방도에 초점을 맞춘 육질등급 기준 개정을 검토하게 된 것이다.

초기에는 근내지방도 기준을 낮추는 안을 제시했으나 농가, 유통 관계자 및 학계의 반대에 부딪히자 근내지방도를 섬세화 지수로 세분하고, 육색, 지방색, 조직감, 성숙도 등의 항목을 추가한 현재의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한우 육질등급 판정항목에 근내지방도 외에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육량등급이든 육질등급이든 기준 개정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한우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FTA 시대에 한우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우의 유전적, 환경적 특성은 물론 소비자의 맛과 건강기능성과 연관된 요소들을 반영하기 위한 전문성은 물론 검토 중인 개선(안)이라도 과감하게 수정할 수 있는 업무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필자가 강조하는 이유이다.

필자를 포함한 대학 교수와 각급 연구기관에서 지금도 열심히 한우 연구를 하고 계신 분들에게도 한우의 울음소리를 전해드리고 싶다. 한우 관련 R&D(연구개발) 자금은 연간 수백억원 규모일 것으로 추정이 되지만, 연구과제 선정 시 이론적인 근거, 즉 가설(hypothesis)을 제시하고 그 가설 검증을 위한 과학적 접근 방식에 대한 과제 제안자와 평가위원들 간의 논쟁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다. 과제 선정을 위한 회의나 보고회에 참석해 보면 한우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봄이 오는 들녘에 한우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지난해 미국산 소고기의 국내 수입물량이 호주산 소고기 수입물량을 추월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 지, 그것이 한우산업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같이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를 고대한다.
 

저작권자 © 농수축산신문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