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 3. 조광래 광래농장 대표

-수입육과의 경쟁…정답은 '고급육'
-농장서 키운 한우 90%는 1+등급 이상

‘실패는 간접적으로, 성공은 직접적으로’

경남 김해에서 한우 230마리와 동고동락하고 있는 청년 축산인, 조광래 광래농장 대표의 인생 모토다. 다른 농장의 성공 사례는 적극 반영하는 한편 실패 사례는 피해가자는 조 대표의 농장 운영 방침이기도 하다. 덕분에 아직 농장을 시작한 지 5년밖에 안된 새내기 축산인이지만 매년 무서운 기세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젊음의 패기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조 대표가 있어 희망이 가득한 광래농장을 소개한다.

# 농업의 무한한 가능성에 눈뜨다
대부분의 청년 축산인이 그렇듯 조 대표 역시 아버지로부터 축사를 물려받으며 시작한 2세 축산인이다. 일반대를 입학했다 축산업의 비전을 보고 건국대 동물생명공학과로 편입, 본격적으로 축산인의 길을 걸었다.

“물론 농장에 들어오게 된 가장 큰 영향은 아버지죠. 아버지가 농장의 기반을 다져놓지 않으셨다면 한우농장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두 번째 이유는 농업에 미래가 있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는 음식이 꼭 필요한 만큼 농업은 절대 사라질 수 없는 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조 대표는 졸업 이후 공채로 합격한 유수의 기업 입사도 포기하고, 한우농장을 선택했다.

처음 농장을 물려받은 2012년 당시에는 한우 40마리 규모의 영세한 농장이었지만 조 대표는 5년만에 230마리로 단순 규모만 5배 넘게 성장시켰다. 뿐만 아니라 대학시절부터 다양한 교육을 찾아 다니며 얻은 탄탄한 정보를 기반으로 한우를 키우니 사육성적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옆에서 보면 그저 순탄하게 아버지의 농장을 물려받아 축산업을 이어가고 있는 후계농으로 보일테지만 광래농장은 조 대표의 노력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 조광래 대표(사진 오른쪽)와 그의 형 조국래 대표. 3년 전부터 형과 함께 농장일을 하고 있다.

# 김해에서 알아주는 ‘열정맨’
“제가 키운 소를 출하할 때면 꼭 도축장에 같이 갑니다. 제가 키운 한우의 상태를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서죠. 고기의 상태를 보면 내가 만든 사료가 고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고, 또 사육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피드백도 받을 수 있어요. 공장으로 치면 검수하는 과정이라고나 할까요.”

미경산우와 거세우를 함께 키우고 있는 조 대표는 자신이 키운 한우를 출하할 때 반드시 도축장에 가서 직접 고기를 확인한다. 새벽같이 일어나 도축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울 만도 하지만 보다 더 좋은 고기를 만들기 위해 부지런을 떤다.

이러한 조 대표의 노력 덕분에 광래농장은 월등한 출하성적을 자랑한다.

광래농장에서 자란 한우 90%는 1+등급 이상을 받는다. 특히 1++등급은 60%에 달한다. 이는 15% 가량의 전국 1++등급 출현율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성적이다. 평균 도체중도 500kg을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데는 처음 축산운영에 뛰어들 때부터 ‘고급육’ 생산이라는 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공부했던 게 컸다고 조 대표는 얘기한다. 특히 직접 만든 TMF(완전배합발효사료)와 조사료를 섞어 먹이고, 14개월령까지만 비타민A를 제한적으로 급여하는 방법이 고급육 생산에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수입육과 경쟁해 이기기 위해서는 고급육 생산이 답이라고 생각해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고급육에서 한 단계 더 넘어 미세마블링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미세마블링이 출하 단계에서 큰 이득을 가져다 주지는 못하지만 머지않아 미세마블링이 대접받는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 바다 건너 농장도 ‘SNS’로 견학
조 대표는 젊은 축산인답게 SNS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는다. 산 넘고 바다 건너의 농장들도 모두 SNS를 통해 견학할 수 있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특히 조 대표는 이미 고급육 생산에 정점을 찍고 있는 일본의 농가를 팔로우해 고급육 생산을 위한 유용한 팁을 얻곤 한다.

“SNS만 잘 이용한다면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농장과 우리 농장의 육질을 한눈에 비교할 수도 있죠. 최상의 마블링을 만들어 내는 일본의 와규 농장도 방안에서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조 대표의 SNS의 활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 대표가 SNS에 올린 한우고기의 육질을 보곤 사업제안을 해오는 곳도 적지 않다.

“아직까지는 농장이 자리잡는 과정이라 생각해 아쉽게도 제안해 오는 사업은 거절하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농장이 운영될 때 쯤엔 다양한 사업을 시도 해보자는 큰 꿈도 꾸고 있습니다. 앞으로 100년을 바라보는 축산기업으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 사례 3. 고재열 원주목장 부장

-'세계 그랜드 챔피언'에 도전하고파
-건강한 젖소 키워 매년 10마리씩만 분양

“내가 만든 젖소로 미국 월드 데어리 엑스포에 갈 겁니다”

고재열 원주목장 2세의 꿈은 개량을 알려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자기가 만든 젖소를 데리고 미국에 가는 것이다.

“‘미국 월드 데어리 엑스포’에 가보고서는 꿈과 목표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냥 젖소를 키우고 우유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미국에 데리고 갈 젖소를 한 번 키워볼 겁니다.”

육종농가로 대한민국 최고 젖소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고재열 부장을 만나러 경기도 양주로 가보자.

# 해외여행 시켜준다더니, 낙농 선진지 연수
“원래는 육군사관학교를 가서 군인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처음부터 아버지는 축산은 하지 말라고 하셨구요. 그런데 대학에 갈 때 쯤 군인이 안된다면 어려서부터 봐온 축산이 적격이라고 생각해서 축산학과에 갔습니다.”

개량으로 낙농가들 사이에선 유명했던 고상헌 원주목장 대표는 장남이 축산학과에 가는 것을 반대했다. 재능이 많은 아들이니 새로운 일을 하면 좋다고 생각했었다.

“막연히 목장 일을 해야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다 할 목표’는 없었어요. 그러다 아버지가 해외여행을 시켜주겠다면서 일본에 보내 주시더라구요. 도착했더니 북해도 낙농 선진지 연수였어요.”

해외여행인 줄 알고 출발했던 일본 여행은 낙농 선진지 연수로 선진 목장과 북해도의 낙농기술 연수, 세미나로 고된 일정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고재열 부장은 미래에 대한 확고한 꿈을 찾았다.

“아버지가 개량으로 유명한 분이고 어려서부터 개량사업을 봤던지라 개량에 관심은 있었지만 북해도 연수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우리나라에서도 저런 목장, 저런 젖소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인 도전이 시작됐다. 군대를 제대하고 2010년 목장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생산파트를 아들에게 물려 줄 본격적인 승계작업을 시작했다.

“3대째 하는 목장인데 아버지가 35살에 할아버지에게 경영권을 전부 받았다고 하시더라구요. 아버지는 제가 목장에 들어오는 첫날부터 35살엔 모든 것을 넘겨준다고 공약하셨어요. 배운 것을 바로 실천하고 빠르게 움직이려면 젊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게도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고 부장은 육종농가로, 개량농가로 아버지가 대한민국에서 이름을 날렸다면 자신은 세계 그랜드 챔피언에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이다.

“목장에 들어오는 첫날 말했어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 모시고 미국 갈게요’ 라구요. 제가 키운 젖소로 아버지와 함께 손을 잡고 세계 그랜드 챔피언에 도전하러 갈겁니다.”
 
# 아버지의 믿음 아래 자신만의 목장으로 탈바꿈 
고 부장이 젖소를 키우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질병’이다. 건강한 젖소를 키우는 것이 가장 기본인 까닭이다.

“번식성적과 건강관리 위주로 사양관리를 합니다. 일단 목장을 맡으면서 제일 먼저 세운 목표는 매년 좋은 소를 10마리씩만 분양하자는 겁니다. 우유로만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젖소를 생산하는 것도 저의 또 다른 목표인 것이죠.”

대부분의 승계목장이 겪는 갈등도 있지만 전적으로 고 부장에게 생산을 맡겨주는 아버지 덕에 고 부장은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사료를 바꾼다고 하면 아버지는 ‘바꿔봐라, 내가 30년 동안 젖소 100마리는 묻었을 거다. 너는 10마리만 묻어라’ 하면서 모두다 맡겨주십니다. 경험으로 배우라는 입장이세요. 본인이 아는 것도 많고 공부도 많이 했지만 고집하지 않고 저에게 생산은 모두 맡겨줍니다.”

그렇게 얼마전 퓨리나 사료의 멀티믹스를 도입했다. 사료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자체 비율을 조정하면서 우군에 맡게 세팅된 멀티믹스 도입으로 노동력은 줄었고 비트, 면실을 보관하던 창고를 없앴다. 이 자리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유가공장을 지어 드렸다.

“저도 성실한 편인데 제가 하루에 12시간 움직이면 아버지는 16시간을 움직이시더라구요. 성실함이나 경험, 지식으로는 아버지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보다 합리적인 목장 운영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시간이 돈이라는 생각에 경영관리에 몰두하는 고 부장은 목장에서 움직일 때도 동선을 생각할 정도로 고민을 많이 한다.

“저희 목장이 좌우로 긴 편이에요. 목장 끝에서 끝을 왕복하면 80m가 넘어가죠. 그렇기 때문에 한번 움직일때도 동선을 계산해서 덜 움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일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작은 노력들이 모이면 목장이 더욱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목장을 늘리고 크게 만드는 것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목장의 규모는 유지하되, 더욱 효율적인 목장을 만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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