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伏 특수에도 업계 '울상'

[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지난 14일 개막한 ‘2018 러시아 월드컵’과 다음달 17일 초복(初伏)까지, 연이은 두 번의 특수가 닭고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에 닭고기 업계의 관심이 쏠려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소비침체에 눈물 마를 날 없던 양계농가나 업체들로서는 이번 특수에 남다른 기대감을 표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월드컵과 초복 시장을 점검해보고 침체된 닭고기 시장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살펴봤다.

 

# 월드컵·복(伏) 연이은 특수에도 농가·업체 울상

닭고기 가격이 수개월째 제자리를 찾지 못하자 농가와 닭고기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리는 러시아 월드컵은 초복(7월 17일)에 앞서 침체된 닭고기 시장에 반전을 몰고 올 중요한 변수로 여겨졌다.

닭고기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월드컵은 너무 새벽 시간에만 경기가 몰려 있지 않아 좋은 여건”이라며 “월드컵 흥행이 치킨 소비로 이어지기 위해선 우리나라의 16강 진출 여부가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성적이 부진해 월드컵 특수에 대한 기대감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커졌다.

이에 대한양계협회 관계자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으로 닭고기 소비가 일시적으로 증가했지만 생산비를 웃도는 정도의 가격 상승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닭고기 시장은 공급 물량과잉으로 인해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5월 도계 마릿수는 지난해에 비해 17% 증가한 9051만마리, 6월엔 전년 대비 10.8% 증가한 9811만마리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이달 21일까지의 육계 산지가격은 ㎏당 평균 1106원으로,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육계 생산비인 ㎏당 1237원과 비교하면 한참 미치지 못하는 상태다.

문제는 이같은 닭고기 공급 과잉 추세가 초복이 낀 다음달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다음달 도계 마릿수는 지난해보다 12.4% 증가한 1억1562만마리로 예측된다. 육계 산지가격도 지난해보다 최대 41.8% 하락해 ㎏당 950~1150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계협회 한 관계자는 “올해 복(伏) 경기도 ‘흐림’으로 예상한다”며 “복을 3주 정도 앞둔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기업은 기업대로, 농가는 농가대로 어려운 상황이다. 충남 논산에서 양계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신병철(50) 씨는 “30년 동안 닭을 키우며 올해처럼 힘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가격이 어느 정도 내려가면 조금 올라가기 마련인데, 요즘은 올라갈 기미도 보이지 않아 힘들다”고 심적 고통을 호소했다.

계열화 업체들도 가격 하락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출하 물량의 시장 회전이 원활하지 않아 냉장 닭을 냉동으로 비축하는 양이 늘어나면서 가격 손실이 생기고, 냉동 보관비 등 부수적 손해가 잇따르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기준 닭고기 냉동 비축 물량은 전년대비 74% 증가한 1223만마리로 집계됐다.

지현수 체리부로 마케팅팀 과장은 “요즘과 같이 불안정한 시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목적으로 체리부로를 비롯한 몇몇 업체는 자체적으로 생산부터 판매까지 관리하고 있다”며 “하지만 닭고기 가공까지 자체적으로 해낼 여력이 없는 업체는 매번 이런 위기 상황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유명무실한 통계자료…허수아비 수급조절협의회

닭고기 공급 과잉의 표면적 원인은 무리한 입추다. 농가가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종계와 병아리를 입추해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는 불안정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 양계 농가의 94%가 계열화를 통한 위탁사육을 하고 있는 상황에선 계열화 업체들이 서로 눈치 싸움을 멈추고 자체적으로 공급 물량 조절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양계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농가는 “계열사가 과잉 생산하고 남는 도계닭(도축된 닭)을 유통시장에 헐값에 넘기는 바람에 닭 가격이 폭락해 일반 농가에 피해가 더 커졌다”며 “고래(계열화 업체) 싸움에 새우(일반 농가) 등까지 터지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정부조차 일 또는 주간 단위로 양계 시장의 흐름을 촘촘히 파악치 못하는 ‘정보 불통’이 반복되는 점도 닭고기 수급 조절 실패의 근본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통계청은 분기별로 가축동향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업계 종사자들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한 달에 한번 발간하는 축산관측 자료를 참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도 축산유통종합정보센터를 통해 통계청의 자료를 바탕으로 육계 사육농가수와 사육마릿수 등 기본적인 내용을 공개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업데이트가 제때 되지 않아 여전히 2016년도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매일매일 가격이 달라지는 양계 시장에서 한 달 이상 된 낡은 통계를 나침반 삼아 움직이니 제대로 된 수급 조절이 이뤄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으며, 정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런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관련 협회를 중심으로 닭고기 수급조절협의회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지만, 제때 회의가 열리지 않을뿐더러 회의를 통해 권고안을 도출해도 구속력을 가지지 못해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기 일쑤다.

 

# 정확한 통계 확보·신속 공유 체계 필요

이같은 상황에서 육계협회는 제대로 된 통계 시스템을 갖추는 게 수급 조절의 기본이라는 인식하에 ‘닭고기산업통계정보 통합시스템(가칭)’ 구축을 제안했다. 닭고기 산업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한 곳에 담아 관리하자는 것이다.

송광현 육계협회 상무는 “우리는 가장 짧은 단위의 통계·예측 자료가 농촌경제연구원의 월 단위 자료”라며 “미국은 주간 단위로 관리하는데 우리도 제대로 된 통합시스템을 갖추고 신속하게 정보를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육계 계열화 업체와 농가들이 거래내역을 정부에 상세히 보고하도록 법안을 만들어서라도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양계 관련 업체나 농가는 닭과 관련된 물동량, 판매량 등을 기관에 공개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큰 틀을 짜야할 농림축산식품부도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해 추정치에 의존하고 있다.

김정주 건국대 명예교수는 “미국은 누가 얼마나 생산해서 어디에 팔았는지 등을 상세히 정부에 보고토록 돼 있어 선제적 대처가 가능하다”며 “국내 계열화 업체들은 기업 정보라며 공개를 꺼리고 있는데, 그렇다면 외부 비공개를 전제로 정부에만 보고하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유명무실화 된 닭고기 수급조절협의회(이하 수급조절협의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협의체 권고안을 이행하지 않을 시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방법도 제안했다.

그동안 수급조절협의회를 통해 입추를 줄이는 등 권고안까지 마련했지만 강제성이 없다보니 행위 주체인 계열화 업체간에 서로의 눈치만 보며 움직이지 않아 흐지부지된 사례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종의 패널티를 줌으로써 대책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농가의 거출금으로 운영되는 닭고기자조금이 시장에서 닭을 사들여 차상위계층이나 군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개발도상국에 싼값에 팔아 넘기는 ‘출혈(出血)수출’ 등의 방법도 농가와 업계의 부담을 더는 해법으로 함께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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