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상전벽해(桑田碧海). 오랫동안 얼음장같이 유지해오던 남북관계가 봄날 눈 녹듯이 평화와 화해의 기류로 급변하고 있다. 촛불혁명 이후 이렇게 빠르고 강하게 냉전체제를 고수하려는 극우적인 생각과 세력들이 사라져가는 현실이 두렵기조차 하다.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우리는 이러한 평화를 향한 움직임을 갈망해 왔었고, 민족 간 교류와 협력강화, 나아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과 지향을 고대해 왔었다. 다만 예상과 달리 너무 빠르게 다가오다 보니 약간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대세의 변화에 협력하고 인내하면서 굳건히 밀고 나가야 할 것이다.

평화지향의 이 시기, 농자재 관련, 남북한 간 교류확대에 대한 기대에 들뜬 분위기이다. 주장들이 조금은 난무해도 그런대로 수긍하는 것은 모두가 희망적인 이야기이고, 아직은 실제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의 주장도 다 이뤄질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북한 간 장기적으로 지향해야할 최고의 가치를 전제하고 관련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실질적인 협력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녹녹치 않다. 장기적인 상호협력과 발전을 담보하는 방법을 강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제부터는 차분하게 남북한 간 농자재 협력방법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과거와 같이 민간인들이 중심이 된, 소소하게 남한의 농자재를 북한에 보내는 식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이러한 지원 방법은 작금 후진국에 고도 기술의 농자재를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으로 지원하는 것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떠한 기술과 인력의 결합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농자재만 보낼 경우 지원된 농자재가 소멸되면 다시 지원해야 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다. 남북한 간 농업기술의 격차를 점진적으로 해소해 가면서 상호 성장을 해야 하는 측면에서 이 방법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과거와 같이 북한에 농자재를 지원하고, 여기에 더해서 사후봉사까지를 남한에서 담당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물론 관련 시설도 지원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농기계를 지원했다면 현장에 수리업체를 만들어서 지원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때 전제되는 것은 북한에서 남한의 수리업체와 인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파견된 남한 수리원들의 생활을 북한이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첫 번째 방식과 성격에서 별 차이가 없다. 특히 북한의 농촌 현장에 남한의 인력과 시설, 경영이 확산될 경우, 북한은 체제안정화를 우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단기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개방화가 지속되고 있으니 농자재를 북한에 판매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북한에 구입자금이 부족하면 남한의 협력자금으로 구입해서 보내자는 주장인데, 이것은 남한 중심의 과잉생산의 해결책일 뿐이다. 우선 북한의 경제사정을 보면 구매능력이 낮다. 그들이 남한에서 생산한 고가의 농자재를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구매력이 있었다면 이미 중국으로부터 많은 농자재를 수입했었을 것이며, 이는 북한 내 생산설비를 갖출 수 있는 기반이 됐을 것이다. 남한에서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첫 번째와 다름이 아니다. 일시적인 협력방책으로 미래에도 유효하다고 보기 어렵다.

회자되는 방법들이 어렵다면 어떠한 방법이 적합할까. 적어도 장기적으로 남북한 농업발전의 격차를 점차 메꾸어 주기 위한 남북한 농자재의 생산과 기술, 산업의 발전 수준 해소 등을 전제로 하고 중장기적으로 접근할 경우, 그 해답은 ‘남북한 농자재산업 특구’의 조성과 운영이다. 이 방법은 북한 농업의 발전, 농기자재 기술과 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에 유효하다. 또한 남한에게는 당면시장의 확대와 더불어 수출경쟁력 확보, 강해진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수출확대를 용이하게 해 줄 것이다.

기본적인 남북한 협의와 합의에 의해 “남북한 농자재산업 특구”가 만들어질 경우 우리가 주도적이라기 보다는 북한의 상황과 요구를 중심으로 중요한 상호 투자와 생산품의 처분 등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상호존중과 동등한 위상에서의, 그러면서도 배려적인 전략구사가 중요하다.

가장 먼저 특구의 기본적인 운영은 남북한 당국과 기업, 즉 민·관의 협력체가 중심이 돼야 한다. 안정적인 생산자원의 지원과 생산물의 배분 등에 있어서 민간 기업들만으로 어려움이 있다. 예상되는 북한의 토지와 노동, 남한의 설비와 에너지 등의 제공에서 남북한 정부의 협의와 협력이 특구 성패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단순한 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으로 그치면 안된다. 중장기적으로 북한의 농자재생산 기술과 능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노동력을 활용해야 한다. 북한 농자재생산 기업과 인력들의 남한과의 교류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북한은 어려움을 갖고 있다. 자칫 북한 노동자들의 급속한 의식변환, 기업들의 경영목표와 방법의 자본주의화에 예민해 하기 때문이다. 서두르지 말고 북한당국과 협력하면서 추진해야 한다.

세 번째 생산된 농자재의 처분이다. 일차적으로 특구에서 생산된 농자재를 남한 내 시장에 판매하고 수출을 하게 될 것이다. 이는 남한 기업들의 당면 시장의 확대라는 수혜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농업발전을 위해 특구에서 생산된 농자재를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북한에서 상대적으로 고가인 특구 생산 농자재를 구매하기는 어렵다고 볼 때, 세 가지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먼저 특구 내 북한 인건비와 농자재를 교환하는 형식, 다음으로는 북한 내 농산물과의 교환청산방법이다. 특구 내 농기자재의 생산에 필요한 기초적인 부품과 물질을 북한으로부터 받고 완제품을 북한에 제공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어느 방법을 택할 것인지는 농자재기업들과 북한 상황을 고려하여 결정하면 좋을 것이다.

특구운영은 장기적으로 통일의 길이어야 하며, 남북한 모두에 유익해야 한다. 특구를 통해 남한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북한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전략을 꾸려야 한다. 남한만의 일방적인 접근은 유용하지 않다. 북한은 체제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그만큼 정치적 요소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며 이 부분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북한의 체제변화 방향과 속도, 그리고 그 깊이를 고려한 “남북한 농자재산업 특구”의 설치와 운영이 필요한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은 분명 남북한 모두에게 길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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