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석 부경대 교수

지금 우리 연·근해 어업은 혼돈 그 자체이다. 수많은 불법어선과 어업인들 간의 지나친 경쟁으로 남획과 혼획이 일상화됐다. 도시어부들이 낚는 물고기양도 이젠 더 이상 재미 수준으로 보여지진 않는다.

수산자원이 줄어드니 연안어선들은 근해로 나오고 근해어선들은 연안으로 들어가는 물고기들을 차단한다. 통발, 자망, 선망, 저인망, 연승 등 수십 가지 어법으로 각각 무장한 어선들로 비좁아진 어장에는 어법만큼이나 다양한 그물과 낚시줄이 수시로 뒤엉켜 조업을 방해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최소 기름값과 선원들 품삯은 줘야하기에 빈 배로 돌아 올 순 없다. 양식장 생사료로 쓰일 어린물고기라도 잡아 올려야한다. 씨가 마르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안 잡으면 결국 남이 잡을 것이다.

하딘이 발표한 공유지의 비극은 이 상황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북해와 같은 세계 주요 어장들도 이와 같은 문제로 폐쇄됐다. 그렇다면 이 비극을 극복할 방안은 없는 것일까?

뜬금없는 것 같지만 게임이론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것을 연구해왔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인간은 전략적으로 상대방을 배신하는 선택을 한다. 상생전략을 택하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갈 수 있지만 상대방이 배신해버리면 내 몫마저 없어지기 때문에 서로 믿지 못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이익이라도 가져가기 위해서 서로를 배신한다.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게임이 반복된다고 가정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러한 배신을 몇 번 겪고 나면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협력적인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배신자들은 쫒겨나거나 아니면 협력자로 바뀌게 된다. 협력이 협력을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사에 해당되는 사회·경제학에서 밝혀진 것뿐만 아니라 진화생물학에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어업에서도 이렇게 협력을 통해 비극을 극복한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EU 수산위원회와 노르웨이, 영국 등이 2009년 남획으로 고갈된 북해 대구를 회복하기 위해 만든 '대구자원회복계획(Cod Recovery Plan)'을 들 수 있다. 유럽의 어업인들은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어획량을 감축했고, 어린물고기와 산란장 보호에 앞장섰다. 또한 지속가능어법을 위해 어구개발과 감시시스템 도입했다. 그 결과 2017년 북해 대구 자원량은 2006년 대비 약 4배 증가하게 됐고, 2017년 7월에 MSC(Marine Stewardship Council : 해양관리협의회) 인증까지 획득했다.

수산물 유통단계에서 협력을 이끌어낸 사례도 있다. 1999년 8월, 미국의 유기농 리테일러인 홀푸드마켓에서 칠레산 농어 판매를 중단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농어의 수요가 크게 늘자 남획과 불법조업이 성행하게 돼 칠레농어가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홀푸드마켓은 어떻게든 공급망을 확보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업인들과 협력해 철저히 MSC의 규격을 준수하게 하고 자원회복을 독려했다.

약 6년 후 남극해 조지아 어장에서 먼저 MSC 인증을 받아 에코라벨을 부착하게 되었고, 그 스토리가 알려지자 프리미엄 시장이 열렸다. 이후 미국 서부해안의 5개 주요어업도 협력을 선택하였다. 현재 전 세계 농어 50% 이상이 MSC 인증어장에서 나오고 있다. 공유지의 비극이 협력을 통해 극복된 것이다.

미래는 평판자본의 시대이다. 누가 강한가보다는 누가 협력적인가가 더 경쟁력이 있다. 유럽에서는 이미 책임 있는 소비, 양심적 소비가 문화로 정착돼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생산자와 브랜드에 스며있는 스토리와 평판에 주목한다. 우리도 곧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가 열린다. 갑질회사로 밝혀지면 바로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듯이 사람들은 가격과 품질을 넘어 가치와 윤리의식을 따지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수산자원을 고갈시키는 이기적인 생산자는 앞으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이제 어업도 품격을 갖출 시기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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