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숙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과장

257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적인 필기구업체 ‘파버카스텔’과 전동공구로 유명한 ‘보쉬’는 ‘히든챔피언’으로 통한다. 히든챔피언은 작지만 각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우량 기업을 뜻하는데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의 저서에서 유래했다.

독일에서 히든챔피언으로 손꼽히는 기업 가운데 20%는 가업승계기업이다. 독일기업의 가업승계는 부(富)의 대물림보다 그동안 쌓아올린 기술과 고유의 가치관을 전수하는 것에 가깝다. 1세대 창업주의 경영 노하우와 안정적인 기술 등을 승계자에게 이양하고, 승계자는 이를 발전시켜 품격 있는 기업으로 만든다.

가업승계는 크고 작은 기업 뿐 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이뤄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으로 농업분야에서 대(代)를 이어나가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산업화와 도시화 등으로 농촌을 떠나는 젊은 세대가 늘면서 농업의 가업승계는 급속히 줄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전체농가 중 영농승계자가 있는 농가는 9.8%로 나타났다. 거의 대부분의 농가는 영농승계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승계농 비율이 1% 높아지면 신규로 1만 농가를 확보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한다. 농업인 고령화와 농촌인구 감소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승계농 확보를 위한 노력과 지원은 젊은 세대의 영농정착 확대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된다.

가업승계농은 영농기반이 일정부분 구축되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정착과 창농에 유리하다. 가업승계농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2차 산업에 집중했던 부모세대와 달리 매출액 및 농외활동 등이 높은 복합적인 경영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농촌융복합산업을 시도하며 지속가능한 농업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가업승계농이 신규농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출발하지만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경영철학과 가치관을 정립하고, 책임감, 리더십, 도전정신 등 역량을 강화하는데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의 가능성도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영농경영승계는 부모의 농지와 자본이 자녀에게 옮겨가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제는 기술과 경영, 판로 및 인적자본 등을 포함한 광의적인 개념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각 현장에서 부모와 자녀간의 갈등을 줄이고 체계적인 가업승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가업승계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경영전문가의 자문을 받는 등 안정적인 영농승계를 위해 노력해야한다. 더불어 가업승계를 통해 피승계자의 기술·경영·브랜드 자산을 승계자에게 성공적으로 조기 이양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지원도 필요하다.

농업·농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한 축은 젊은 농업인을 확보하는 것이다. 특히 가업승계를 통해 농업을 잇는 젊은이들은 전문농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척 높다. 이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살려 농업농촌에서 자리 잡는다면 농업분야 ‘히든 챔피언’의 탄생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농수축산신문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