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으로 ‘더불어 사는 삶’ 실천하는 농촌의 배움터
문제 집합소는 옛말…땀과 노동가치 배우고 먹거리 소중함 깨우치며 情 나눠요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농업은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공급함으로써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며 농촌은 농업을 통한 경관을 제공해 치유와 휴식의 공간이 된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농업·농촌은 이러한 역할 외에도 지역사회 구성원과 더불어 살아가며 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키는 역할도 수행한다.

사회적 농업으로 농업·농촌 현장의 정(情)을 나누고 있는 곳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렘넌트지도자학교(Remnant Leader School)
-(하)탁촌장

 

경남 함양군 조그만 농촌마을에는 특별한 학교가 있다. 아이들의 북적대는 소리와 시끌벅적함이 여느 학교와 다를 바 없는 이곳은 과거 소위 ‘문제 학생들의 집합소’라 불리던 대안학교 ‘렘넌트지도자학교(Remnant Leader School)’다.

1998년 9월 21일 ‘경주 청소년미래 지도자훈련원’이란 명칭으로 설립돼 2004년 ‘렘넌트지도자학교(렘넌트공동체훈련장)’로 함양에 이전·개교했다. 경주에서 11명의 교사와 26명의 학생으로 출발한 렘넌트지도자학교는 현재 50여명의 상주 및 외부교사와 100여명의 학생들이 함께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소중한 보금자리가 됐다.

특히 설립 초기 주위의 따가운 눈초리가 이제는 사랑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 문제 학생 집합소에서 지역의 소중한 학교로

▲ 즐겁게 사과를 수확하는 학생들의 모습

최근 왕따 등 학교생활과 관련한 문제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가해학생이나 피해학생 모두 큰 마음의 상처를 입고 제도권을 벗어나 대안학교를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국·영·수 위주의 단순한 지식 교육을 지양하고 인성교육에 주안점을 두고자 새로운 교육방식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렘넌트지도자학교도 인성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러한 여느 대안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학생들과 함께 농촌에서 땀 흘리며 농업을 통해 지역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보람과 성취감은 물론 인성교육까지 함께 한다는 점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공동생활을 하며 많은 방과후 활동을 한다. 1인 1학기 오케스트라 활동으로 악기를 하나씩 다룰 줄 알아야 하며 매년 1월에 연주회도 개최한다. 또한 농촌 지역 홀몸노인을 돌보거나 양로원 등을 방문해 봉사를 하는 1인 1나눔 인턴십도 운영, 지역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아울러 매년 ‘자기 스스로를 이기는’ 국토 대장정을 실시한다. 하루에 25~30km를 걷는 힘든 과정이지만 이를 통해서 학생들은 자기를 이기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값진 경험을 하며 성장해간다.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익히는 공간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는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 농업으로 배우고 더불어 성장하는 특별한 학교

▲ 수확한 사과를 싣고 과수원을 누비는 김의성 교사와 학생들

렘넌트지도자학교 학생들만의 특별한 경험은 농업이다. 학교에서 약 4950㎡(1500평) 규모의 밭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소중한 경험을 한다. 땀과 노동의 가치를 배우고, 우리가 먹는 음식의 소중함을 직접 익히는 것이다. 또한 지역의 고령 농업인들을 돕기 위한 활동도 전개한다. 70세가 훌쩍 넘어 혼자 사과 박스를 나르기조차 힘에 부치는 고령의 농업인들을 위해 봉사를 하며 말벗이자 친구가 됐던 것이다.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이들은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됐다.

학생들 역시 농업을 통해 땀과 노동의 가치를 배우고, 먹거리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됐음은 물론 고령의 어르신들의 말벗이자 손자·손녀가 되면서 어른에 대한 공경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문화 가족, 장애우 등과 함께 어울려 농업관련 교육과 실습·체험을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소외계층의 자립을 돕는 동시에 일반 청소년들과의 유대관계를 형성, 사회화를 돕고 있다.

적화, 적과, 열매솎기, 수확, 선별, 포장 등 사과를 재배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주고받는 이야기와 함께 흘리는 땀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르침이자 자연스러운 사회화라는 것이다.

# [인터뷰] 김의성 렘넌트지도자학교 교사/다락골농원 대표

-후대를 키우고 지역 공동체 유지·발전…미래의 ‘비밀병기’

▲ 김의성 렘넌트지도자학교 교사/다락골농원 대표

“1998년 25살에 사회교사로 처음 렘넌트지도자학교와 연을 맺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 동안 농업의 무한한 가능성에 경이로움마저 느끼고 있습니다. 농업은 단순히 먹거리를 생산해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후대를 키우고, 지역 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키는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학생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체성에 대해 이해하며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농업은 개인과 지역, 사회를 연결하는 매개가 될 수 있습니다. 고령화, 인구감소 등으로 어려워지는 농업 여건과 산적한 농업 현안에 대해 해결하는 첩경은 현장에 있는 만큼 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농업의 소중한 가치를 알리고, 이를 통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렘넌트지도자학교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가 반드시 해야 할 사명입니다. 렘넌트지도자학교의 렘넌트는 농업과의 만남을 통해 ‘남은 자’라는 의미에서 미래의 ‘비밀병기’들이 자라는 소중한 배움터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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