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고려 말 공민왕은 명과 원나라와 맞서 고토회복과 영토확장에 열심이었다. 공민왕은 나라가 안정되고 강해야 북방확장과 고수정책을 위한 힘이 배양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중도 혁신적인 신돈이라는 승려를 국사로 삼고 개혁정치를 펼친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듯이 공민왕과 국사 사이에 구 세력가들의 이간질이 극대화되고 결국 신돈도, 고려도 죽게 되는 역사가 기록된다. 단순화한 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생사기로의 농기계산업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미래 농기계산업의 발전과 관련해 여전히 토종 농기계 산업에 대한 엄중한 진단이 없다. 미래 지향 가치와 현실적인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와 미래 스마트, 첨단농업의 기축인 농기계와 관련 자재의 생산과 공급, 개발을 담당해야 하는 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파악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 환언하면 산업이 처한 상황과 여건에 대한 분석, 발전목표의 설정, 수단과 방법의 강구가 고려 말 역사가 주는 첫 번째 중요한 교훈이다.
간단한 변화와 개선이 아닌 혁신적인 사고와 대응책이 없이 우리 농기계산업이 바람직하게 성장하기 어렵다. 이러한 판단을 하고 진취적인 전진을 하려고 할 경우 반드시 고려 말 구 세력가들처럼 그 혁신을 어렵게 하려는 세력들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이다. 어느 세력과도 사적인 연대가 없는 엄중한 진단과 혁신적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는 신돈의 선택은 그래서 중요한 선택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 실현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수용하고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미래를 지향하기 때문에 과거를 답습하는 것에 비해 불확실성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길이 옳다면 왕과 백성은 합심해서 밀고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도자와 백성사이에 강력한 신뢰가 필수적이다. 강대국과의 갈등으로 자칫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고토회복이 고려의 최고 가치라면 응당 그 과정에서의 곤란한 지경을 합심해서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지도자인 공민왕의 국정 철학이다. 사대주의에 빠져 적당하게 보신만을 추구한다면 국가도 국민도 보다 좋은 세상으로도 나갈 수 없다. 한 기업이 아닌 산업에 대한 예리한 현실 판단과 미래의 설계, 이를 실현하기 위한 지지세력 결집과 설득, 협력이 핵심이다. 지도자의 리더쉽이 개혁과 혁신의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많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농기계산업의 중추적인 대기업들 조차 경영부실이 가속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회자된다. 상처가 더 깊어지기 전에, 수술로도 어렵게 되기 전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크다. 개혁의 구심점을 만들고 그 조직(사람)을 중심으로 혁신전략을 만들어야 하는데, 모두 일어나 강력히 밀고가야 하는데 농기계인들은 너무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고려 신하에서 조선국왕이 된 이성계는 정도전이라는 불세출의 전략가와 함께 고구려 영토 회복을 위한 장대한 계획을 만들고 실행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왕자의 난,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고구려 영토회복의 의지는 우리 민족에 한으로 남게 되었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그를 통해 미래에 대응할 지혜를 구할 때 의미가 있다. 회복불능으로 너무 기울기 전에 우리 농기계 산업은 역사를 통해 지혜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