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충남은 축제의 물결이다. 백제대제전에 홍성 인물축제, 태안의 충남도민체전, 흥타령 축제, 축산인 한마음대회에 전어축제까지 가히 축제의 물결이다. 이런 축제장마다 VIP 1번으로 도지사를 넣는다. 그것이 도백에 대한 예의이며 또 행사의 격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안시 행사에서 너무 많이 그를 부르는 것 같다. 물론 천안은 양 지사의 인생의 고향이고 정치의 고향이다. 양 지사는 천안시 광덕면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거기서 초·중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해 고시에 패스, 변호사가 돼 금의환향했다. 

천안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정치에 입문, 17·18·19·20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다. 지난 6·13지방선거에서는 충남 유권자의 63%가 그를 지지했고 그중 천안시민은 70%가 표를 몰아줘 도지사에 당선시켰다.

양 지사에 대한 천안시민의 사랑은 이처럼 굳건하다. 그는 아예 천안시민의 꿈동이였는지 모른다. 천안은 정치인 양승조의 젓줄이며 텃밭이다. 힘을 실어 북돋아 주고 어려운 고비마다 엄마의 손길처럼 부드럽게 표로 어루만져 줬다. 양 지사는 그 사랑, 그 정서에 늘 보답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늘 고향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는 대승적 별리(別離)를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랑하기에 떠나보내야 했던 우리의 아름답고 숭고한 이별의 한은 시와 문학과 대중가요 노랫말 속에 절절이 녹아 내려오지 않던가. 정읍사(井邑詞)나 정선아리랑부터 단장의 미아리고개까지. 이제 천안은 독하게 맘먹고 그를 놔줘야 한다. 그것은 어미 독수리가 어린 수리를 높은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늑대가 매몰차게 눈보라치는 광야에 어린 새끼를 내버리고 떠나가는 그 것과 같은 엄숙한 과정이다.

대도를 향해 소걸음을 해야 하는 ‘큰 바위 얼굴’을 위한 잠정적인 보류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를 자유로운 도지사가 되게 해 줘야 한다. 천안이라는 엄마의 치마폭에 늘 감싸려 해서는 안 된다.

흥타령 축제장에 2번씩이나 부르고, 무슨 고등학교 개교기념일에 부르고, 농·축협 행사장과 소상공인 모임에서 불러대는 것은 숙고돼야 한다. 도지사는 도백(道伯)으로서 도백(道白)을 챙겨야 한다. 15개 시·군 220만 도민 전체의 리더이지 천안시민만의 대표가 아니다.

그는 당선 후 맨 먼저 고향 천안에서 연설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밝혔다. “저 양승조 이제 잠시 여러분 곁을 떠나있어야 합니다. 결코 저는 여러분을 잊지 않고 항상 곁에 있겠습니다. 여러분 저를 이해해 주실거죠.” 그 때 천안시민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했었다.

도지사의 하루는 시간이 아니라 분(分)을 쪼개 쓰는 자리이다. 그도 틈나면 천안에 가고 싶을 것이다. 천안 행사 초청장에 웬만하면 참석할 수 있도록 정무 비서진에서는 스케줄을 짜려고 할 것이다.

이제 그는 천안시민과만 손잡고 다니는 지역 정치인이 아니다. 충청의 지도자로 더 큰 재목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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