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가 바꾼 주산지…체계적 종합대책 시급
사과 주산지, 경북→강원…복숭아, 경북→충북·강원…감귤, 제주→전남
농업인 생계 위협…기상 예보 정확도 높이고 안정적 소득제도 마련 시급
온실가스 배&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최근 때 아닌 이상저온이나 갑작스런 폭염과 집중호우,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가뭄 등으로 큰 피해를 입는 농가들이 늘고 있다. 이를 ‘이상기상’이나 ‘기후변화’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농가들 입장에서는 좀처럼 와 닿지 않는다. 그저 평소와 다른 날씨에 하늘만 원망스러울 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구온난화라는 얘기가 나오는가 싶더니 잘되던 농사가 어느 순간부터 안 되기도 한다. 전문가들로 얘기로는 지구가 더워져서 주산지가 북상한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농사나 잘 됐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상기상, 기후변화로 농업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하는 농업인은 많지 않다. 먼 이야기로만 인식되고 있는 기후변화와 이상기후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안을 알아봤다.

# 농업의 불확실성이 커진다

봄철 갑작스런 한파나 태풍 후 갑자기 찾아온 폭염, 집중호우, 겨울이 돼도 따뜻한 날씨 등 과거와 다른 패턴의 날씨로 인해 한해 농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는 이유는 이들이 예측하기 어려웠다는 점에 있다. 우리의 절기가 농사의 시기와 밀접한 관계를 갖듯 우리 농업은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의 기후와 환경, 사계절의 변화 등에 맞게 잘 계획된 것이 특징이다. 이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평균적인 기상과 기온 등이 경험적으로 반영된 결과물로 한해 농사를 위해 시기별로 해야 할 일을 알 수 있게 짜여졌다. 지금도 농작업일정은 작목별로 해야 하는 일과 예상되는 기상재해, 병해충 발생 등을 매월 또는 매 시기로 구분·정리해 제공된다.

이처럼 농업은 계획적인 일련의 작업인데 예기치 못한 급격한 기상변화는 전혀 대비하지 못한 가운데 치명타를 입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최근 우리나라는 봄철 때 아닌 냉해 피해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4월 최저기온이 영하 5℃∼영하 1℃까지 떨어지면서 6121㏊의 농경지에서 저온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의도 면적의 21배가 넘는 규모다. 특히 사과와 배 등 과일 피해면적은 전체 피해면적의 82.4%인 5046㏊나 됐다. 111년만에 찾아왔다는 7월 폭염은 더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평균기온은 26.8℃로 평년 평균기온 24.5℃보다 2.3℃가 높았으며 최고기온은 31.6℃로 평년 최고기온대비 2.8℃나 높았다. 강수량은 172.3mm로 평년의 61.6% 수준에 불과했다. 강수일수도 7.6일로 평년보다 6.8일이나 부족했다. 전국적으로 폭염일수는 15.5일로 평년 3.9일의 4배에 달했으며 열대야일수도 7.8일로 평년 2.3일의 3배가 훌쩍 넘었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폭염과 가뭄으로 2909ha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8월 농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사과, 배 등 과일이 1308.3ha, 무와 배추 등 채소가 438.2ha의 피해를 입었으며 가축도 500만마리 이상이 폐사했다.

# 주산지뿐만 아니라 농축산물까지 바뀐다

이러한 이상기상과 함께 지구온난화에 따른 평균기온 상승으로 주산지 지형도도 바뀌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현황’ 자료에 따르면 사과 주산지는 경북 영천에서 강원 정선·영월·양구지역으로, 복숭아는 경북 청도에서 충북 충주·음성, 강원 춘천·원주 등지로 이동하고 있다. 포도도 경북 김천에서 충북 영동과 강원 영월로, 제주 특산물로 유명한 감귤도 전남 고흥이나 경남 통영·진주 등지로 재배지가 옮겨가고 있다. 또한 남부내륙지방이나 제주에서는 아열대 작물을 재배하거나 커피가 생산되고 있다. 지속적인 기온상승으로 농작물 재배 주산지가 북상하고 있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평균기온이 1℃ 상승하면 작물재배지가 80km 북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1911년부터 2010년까지 100년 동안 평균기온이 1.8℃ 상승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이 기간 작물재배적지가 144km나 북상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시기에 맞춰 짓던 농사가 더 이상 그 지역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기후변화는 기존에 없던 병해충의 발생과 외래·돌발병해충의 발생을 야기하기도 한다. 축산분야도 고온과 황사로 가축생산성이 저하되거나 호흡기질환 등의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쌀 생산량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안남미(安南米)라 불리는 장립종 인디카 재배와 관련 연구가 늘면서 많은 전문가들이 주산지 지형도 변화에서 나아가 농수산물 지형도 변화까지 우려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정희성 환경과 문명 대표는 “온난화는 작물의 성장기간을 길게 하고, 재배지역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광합성 작용과 수분작용을 둔화시키거나 정지시켜 고사로 이어지게 할 수 있고 기존 곡창지대를 건조기후로 바꿔 곡물생산 가능지역을 감소시킬 것이다”며 “또한 작물경작지대의 북상 및 고지대로의 이동은 생태계의 교란으로 이어져 가축과 농작물은 병해충에 취약해질 것이고 잡초는 번성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 예보 정확도 높이고 소득안정책 마련해야

이러한 우려 속에서 당장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는 농업인을 위한 대책은 무엇보다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먼저 기상 및 농업관측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지난해 기상청은 태풍 ‘쁘라삐룬’ 뒤 찾아온 폭염을 제대로 예보하지 못했다. 호들갑을 떨었던 태풍은 예상보다 순탄하게 지나간 반면 뒤늦게 소식을 전한 폭염의 피해는 막대했다는 점에서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많은 농업인들과 현장 관계자들은 보다 정확한 기상 예보를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갑작스런 자연재해나 기존에 없던 외래·돌발 병해충이 발생했을 때에도 농업인이 안정적으로 소득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농식품부에서는 2022년까지 2017년 기준 53개에 불과한 농작물재해보험 대상품목을 67개로 확대하는 등 농업재해보험을 확충하는 한편 농약대, 대파대, 시설부자재 등 재해보험 미적용 항목에 대한 재해복구비 지원단가를 표준소득, 물가 등을 반영해 단계적으로 인상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재해보험가입률을 높이기 위해 시·군 간 보험료율 격차도 완화키로 했다. 수입보장보험도 농가수요와 보험 도입가능성, 가격변동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콩, 포도, 양파, 마늘, 고구마, 가을감자 등 6개 품목에서 양배추, 감귤 등을 추가해 12개 품목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아울러 농가별 손해평가 간소화를 위한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 온실가스 줄이고 체계적인 종합대책 마련해야

이상기상과 기후변화에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상기상과 기후변화가 단순히 지금뿐만이 아니라 향후 지속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선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농업분야에서도 온실가스나 탄소배출을 저감할 수 있는 기술과 재배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로컬푸드를 실천하는 등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의 거리인 푸드마일리지를 줄이기 위한 노력 등이다.

보다 적극적인 대처방안으로는 새로운 기후환경에 적합한 저항성 품종의 개발과 보급, 기후변화에 맞는 영농방법 도입과 기술개발, 새롭게 재배되는 작물의 재배방법이나 재배기술에 대한 교육 확대, 신규 재배작물의 판로 확보 노력 등 중·장기적 관점에서 농업 환경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아열대작물의 재배는 새로운 수출작물로의 높은 가능성까지 함께 타진되고 있다.

김창길 농경연 원장은 “기후변화는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우리 농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이에 대한 체계적인 대책 실행을 위한 시간과 예산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농업계는 물론 범정부 차원에서 지혜를 모아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보다 단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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