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경민 대기자의 현장을 찾아서 - [르포] 그들에겐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4대강 사업 피해농가'를 만나다
영농소득 전무했던 7년, 파산위기에 내몰려…특단의 대책 강구해야

[농수축산신문=길경민 기자] 

- 생존터에서 쫓겨나고 융자상환만 남아

- 귀농의 꿈은 4대강 사업추진과 함께 물거품…"하루 하루 버티는 삶"


4대강사업으로 두물머리 하천부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이 정부의 대체부지 구입비용 융자금 상환기한이 다가오자 파산을 우려하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관련 농업인들에 따르면 경기 양평 두물머리 일대 약 27ha(8만2000여평)에서 유기농을 해 오던 농업인들은 정부의 4대강사업으로 2012년 8월 이 지역에 설치됐던 영농시설을 완전히 철거하고 양평 일대로 흩어졌다.

당시, 정부와 농민은 천주교 수원교구의 중재로 두물머리에 생태학습장을 조성하기로 하고, 합의 이후 농민들은 정부로부터 3년 거치 17년 상환조건으로 농가당 3억7500만~11억8000만원의 융자를 받아 대체부지를 마련, 이전했다.

그러나 유기농업을 하기 위해 새로 마련한 땅의 비옥도를 높이고, 영농시설을 갖추기까지의 준비기간만 3~5년이 소요돼 일정 소득 없이 거치기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경기도와 재협상을 거쳐 상환조건을 10년거치 10년 상환으로 조정했으나 매년 갚아야 하는 원금을 감당하기 버겁다는 게 농민들의 주장이다.

양평 개군으로 터전을 옮긴 서규섭씨는 “우여곡절 끝에 거치기간이 연장되긴 했으나 농민들의 사정은 달라진 것이 없다”며 “거치기간 연장을 받아들인 것도 당장 급한 불을 끄지 못하면 파산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유기농업 준비기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상환시기가 도래한 점과 4대강사업 반대와 유기농지 보전 투쟁이 시작된 2009년부터 따지면 영농소득을 올릴 수 없던 시간이 총 7년여에 달했던 점을 고려해 볼 때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이전 조건으로 합의한 생태학습장 조성도 반드시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두물머리 유기농지는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역사가 담긴 곳인 만큼 두물머리 하천부지를 최대한 생태적이고 공익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4대강사업 추진의 명분으로 삼았던 생태학습장 조성이란 당시 합의도 이행되지 않은 채 농민들은 융자금 상환압박에 짓눌리며 파산만 기다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

“당초 정부의 대체농지 구입자금 융자지원 제안은 말도 안 되는 것 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두물머리와 인접한 하천부지에서 쫒겨난 최요왕 씨는 당시를 생각하며 울분을 토해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어렵게 귀농을 결정한 최 씨가 처음 정착한 곳이 경기 양평 소재 두물머리 하천부지, 최 씨는 이곳에서 시설원예를 키우며 전원생활의 여유로움과 부농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귀농 5년만인 2009년 5월 두물머리가 4대강 사업 한강 제1공구로 포함되면서 최 씨의 삶은 엉망이 돼 버렸다.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최 씨는 이때부터 투쟁의 전면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햇빛을 가리기 위한 모자는 머리끈으로 대신해야 했고, 손에는 사료푸대와 농기구 대신 ‘4대강 사업 결사 반대’란 피켓을 들어야 했다. 4대강 사업으로부터 농지를 지키는 역할을 비롯해 국회, 정부를 오가며 ‘읍소’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코 짧지 않은 40개월을 이 일로 흘려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은 쉽게 끝나지도 않았고, 결코 이길 수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심신은 피폐해 졌고, 생활고까지 겪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천부지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조건으로 정부의 농지구입 융자금 지원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인근에서 농사를 짓던 서규섭 씨 역시 “과연 농사를 지어 융자금을 갚을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도 있긴 했으나 오랜 기간의 투쟁으로 정신적·금전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 조건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 곳에서 친환경농업을 하던 11농가가 같은 선택을 하고, 다른 곳으로 내몰렸다.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 일대 16만5290㎡ 규모의 하천부지에서 유기농업을 하던 농민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양평 관내로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최 씨는 정부의 토지매입 융자금으로 하천부지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3755㎡ 규모의 농지를 매입, 비닐하우스 4동을 짓고 딸기농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딸기농사는 그리 만만치 않았다.

9월에 농사를 시작한 후 이듬해 2월부터 5월까지 3개월간 수확한 소득이 평당 8만~10만원은 돼야 하는데 딸기농사 초보인 최 씨의 경우는 5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같은 수익을 단순 계산으로 해 볼 때 연매출이 고작 3000만원 남짓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 씨는 숨이 턱 하고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4년 후 부터는 토지매입 융자금에 대한 상환을 해야 하는데 이 같은 매출로는 어림없는 노릇이다. 정부로부터 빌려 쓴 돈 5억3000만원을 2023년부터 10년간 매년 5000만원씩을 갚아야 하는데 농사를 통한 최 씨의 연매출은 300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최 씨만의 고민이 아니다. 최 씨와 같이 정부의 융자를 받았던 다른 농가들도 상환기간에 차이만 있을 뿐 뾰족한 수를 찾을 리 만무한 실정이다.

융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녀 학자금은 물론 전세금까지 빼는 농가도 있고, 이미 융자금을 제 때 상환하지 못해 파산한 농가까지 나왔다.

이들 농업인이 농지구입을 위해 빌린 돈은 연리 1.5%, 3년거치 17년 균등분할의 조건으로 적게는 3억750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11억8000만원이었다. 농가들 중에는 2015년 경기도와 협상을 벌여 거치기간을 10년간 연장을 받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늘어나지 않은 영농소득으로는 상환기간만 연장됐을 뿐 그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루, 하루 버틴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겁니다”라는 최 씨의 한 숨은 땅이 꺼질 듯 했다. 최 씨가 귀농 당시 품었던 꿈은 4대강 사업추진과 동시에 날아갔을 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 반대 투쟁의 세월보다 더 긴 세월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최 씨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곳의 농업인들은 아직도 4대강사업과 끝나지 않은, 끝날 것 같지 않은 싸움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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