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2017년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계란 가격이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장기간 가격 하락 국면이 계속되자 최근 들어 사료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농가까지 생겨나고 있다. 업계에선 30년 이상 관행으로 굳어진 사후정산 거래인 소위 ‘후장기’가 산란계 농가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양계업계의 현안과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방안 등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上) 고질적 병폐 ‘후장기’에 농가 몸살
  (中) 계란 ‘고시가≠농가 수취가’, 누가 득 보나
  (下) 위기탈출 해법은   

 

유통상인이 책정한 가격으로
거래명세서 발행...한꺼번에 대금 정산
농가는 얼마에 팔리는지 전혀 몰라

유통상인이 가장 낮은 거래가격
농가에 일괄적 통보
계란 가격 담합 의혹

계란가격 할인율 적용 너무 커
병아리 들이는 비용은 빚으로 남아
산란계 농가 경영난 가중
사료값 미결제로 인한
사료업계 경영난으로 전이

 

양계 사료 생산량 역대 최고, 업계는 울상 

지난해 국내 산란사료의 생산량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산란사료 업계가 울상이다. 성과를 자축하며 축배를 들어도 모자랄 판에 그들은 왜 울상을 짓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11월, 국내 산란사료 생산실적은 231만톤으로 이미 2017년 연간 생산량인 219만톤을 훌쩍 넘어섰다. 특히 지난해 10월 양계 사료 생산량은 23만톤을 넘어서며 월 단위로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4년 사이 생산량이 22만톤을 넘었던 달이 5번에 불과했던 것에 비춰보면 23만톤 이상은 엄청난 양이다.

이처럼 양계 사료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는 건 그만큼 양계 산업의 규모가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산업의 규모 확장세와는 달리 개별 농가들은 오히려 폐업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만큼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지난 2017년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계란 가격이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산란계 농가의 어려움이 좀처럼 해소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농가의 어려움은 최근 양계 사료 업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몇 개월째 사료 대금을 연체하는 농장이 급격하게 늘어나 사료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사료업계는 즉각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모든 것이 업계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되는 후장기 때문이라며 계란 유통상인들을 향해 화살을 겨냥했다.

한 사료업계 관계자는 “계란 가격이 낮게 형성된 상태에서 농가 평균 매일 나오는 수만개의 계란을 처리하려다보니 유통상인에게 협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관행처럼 이어져 온 후장기 거래와 가격할인(D/C) 때문에 산란계 농가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결국 사료값 미결제로 인한 사료업계의 경영난으로 전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계협회, 유통상인 계란 담합 의혹 고발 

사후정산 거래방식, 일명 후장기 거래는 거래를 할 때마다 정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 후 한꺼번에 정산을 하는 방식을 말한다. 농가와 계란 유통상인이 가격 없이 수량과 품목(왕란·특란·대란·중란·소란)만 기재된 거래명세표를 주고받다가 한 달 단위로 유통상인이 책정한 가격으로 거래명세서를 발행, 한꺼번에 대금을 정산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농가는 본인이 얼마에 계란을 팔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른바 ‘깜깜이 거래’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대를 이어 산란계 농가를 운영하고 있는 A 씨는 “우리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정성들여 닭을 키워 계란을 내놓지만 한 달 뒤 정산된 명세서를 받아볼 때마다 허무함이 밀려온다”며 “내가 파는 물건이 얼마인지 모른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것이냐”고 부당함을 토로했다.

후장기의 더 큰 문제는 유통상인들이 한 달 단위의 정산을 하며 일방적으로 가격할인을 통해 본래 거래 예상가보다 더 낮게 가격을 매기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양계협회는 이 과정에서 유통상인들의 가격 담합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양계협회의 한 관계자는 “지금껏 협회가 발표해왔던 고시가격을 기준으로 큰 폭의 가격할인이 적용된, 동일한 수준의 가격을 농가에 통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유통상인들이 비공개 온라인 채팅방 등을 이용해 가격 정보를 교환하고 가장 낮은 거래가격을 농가에 일괄적으로 통보한다는 이야기까지 있다”고 말했다. 

양계협회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의 기간 협회가 고시한 가격과 실거래 가격의 차액 총액이 2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 유통상인이 계란 유통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 이 기간 유통상인이 부당편취한 금액은 총 1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양계협회는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 21일 우편을 발송, 일부 지역의 계란 유통상인들을 대상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계란 가격의 담합과 불공정 거래 의혹에 대해 고발했다.

▲ 위 사진은 지난해 5월 2일 대한양계협회의 계란 고시가격, 아래 사진은 같은 날 실제 농가와 유통상인의 거래명세표다.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특란 기준 가격으로, 고시가는 10개당 1110원으로 개당 111원, 실제 거래명세표는 개당 45원을 나타내고 있다.

유통상인들 ‘억울’, “시장경제원리에 따른 것”

양계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25%를 넘지 않던 할인율(고시가격 대비 D/C가격)은 지난해 2월 52%에 달했다. 농가가 실제 수취한 가격이 고시가격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난 5월 2일에도 특란 고시가격은 111원이었지만 한 농가와 계란 유통상인의 실제 거래명세표에선 단가가 45원에 불과해 66원의 D/C가 있었던 것<사진>으로 나타났다. 할인율로 따지면 무려 58%다.

경기도에서 양계 농가를 운영하는 B 씨는 “D/C가 너무 크게 적용되다보니 사료비와 인건비를 지불하고 나면 새로 병아리를 들이는 비용은 계속 빚으로 남는다”며 “빚만 갚을 수 있는 정도라도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통상인들은 이 같은 지적에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수십 년간 계란 유통업을 해 온 C 씨는 “물량이 없어 가격이 높을 땐 유통업자들이 농가에 오히려 웃돈을 주고 계란을 사온다”며 “가격이라는 게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인데 농가의 상황이 어렵다고 유통상인을 비양심적인 장사꾼 정도로 몰아가는 건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어 C 씨는 담합 의혹에 대해서도 “계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다른 농가와 더 낮은 가격에 계란을 거래했다는 소문을 듣고도 비싼 가격에 계란을 들여올 유통상인이 어디 있겠느냐”며 “농가들이 수급조절을 통해 적절한 물량을 공급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인데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무조건 유통상인의 탓으로 떠넘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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