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기 목돈 나눠 지금…무늬만 월급
매달 일정금액으로 받아 수확기 전 경제적 부담 완화
농산물 판매대금 받는 즉시 상환해야…만족감 상실 우려
농업인 월급제 용어 혼란

[농수축산신문=길경민 기자]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농업인 월급제’가 농업인들에게 득일까? 실일까?

2013년 경기 화성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이후 인천 강화, 경기 안성 등으로 확대돼 현재는 전국 20여개 지자체에서 농업인 월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강원 철원군도 도내에서는 처음으로 농업인 월급제를 시행키로 하고, 다음달 1일부터 15일까지 농업인들로부터 참여 신청을 받는다.

이 같이 농업인 월급제를 도입하는 지자체가 늘어나면서 농업인들의 계획적인 생활을 유도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오면서 차라리 농민수당을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다.

 

# 계획적인 생활 유도…지자체, 이자 지원

농업인 월급제는 수확기 때 벌어들이는 예상소득의 일부를 농업인들에게 매달 일정 금액으로 나눠서 지급하는 제도이다. 수확기 때 한꺼번에 목돈을 받다보니 계획적 지출이 어렵고, 이로 인해 다음해 영농철이면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적절한 제도로 평가된다.

이상근 철원군 농업기술센터 계장은 “매년 수확기 이전 농업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농자재비, 생활비, 공과금 등 자금부족”이라며 “매월 월급으로 지급을 받으면 경제적 부담이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철원군은 농협중앙회의 협조를 구해 농업인 월급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농협과 약정수매제를 맺은 벼 생산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농업인 월급제 신청을 받은 후 이들에게 수확기 예상 소득의 60%를 다음달부터 6개월간 균등 분할해 지급키로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 선도금을 당겨 받아 농업인들이 필요자금으로 사용한 후 수확기 벼 판매대금으로 상환하는 것이고, 이 때 발생하는 이자는 철원군에서 지원키로 했다.

인삼, 담배, 감자 등 지자체별로 대상작목에는 차이가 있으나 농업인 월급제 지급 시스템은 이와 대동소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급하는 금액도 지자체별로 차이가 있는데 철원군의 경우 1차년도 300농가를 목표로 농가당 30만~200만원까지 차등 지급된다.

안경환 농협철원군지부장은 “농업인들이 매달 일정금액을 받을 경우 계획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더욱이 무이자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농업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목돈을 푼돈으로 받는 구조

농업인 월급제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에서는 ‘목돈을 푼돈’으로 받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농업인 월급제는 수확기 때 농산물 판매대금으로 받는 돈을 나눠서 받도록 설계돼 있어 결국 ‘셀프 월급’에 지나지 않고, 목돈으로부터 오는 만족감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김용빈 철원군농민회장은 “농업인들 돈을 농업인들에게 주는 것인 만큼 내용적으로는 농업인 월급제가 아니다”라며 “농업인 월급제라는 용어에서 오해의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자라도 지원을 받으니 농업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은 있으나 명백히 농업인 월급제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게 김 회장의 주장이다.

더욱이 수확기 때 농산물 판매대금을 받는 즉시 농업인 월급으로 받은 돈을 상환해야 하는 만큼 빈 통장에서 오는 심리적 허탈감은 더 커질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차라리 영농철에 영농비 부담이 많은 게 사실인 만큼 영농비에 대한 무이자 자금을 지원해 주는 게 맞고, 농업인 월급제란 용어도 이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농민수당을 농업인 월급제의 대안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실체도 없는 농업인 월급제로 혼란을 주기보다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지켜온 농업인들에게 정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Interview>김용빈 철원군농민회 회장 - 농업의 공익적 가치 인정한 농업인 수당 필요

“무늬만 ‘농업인 월급제’보다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지키고 있는 농업인들에게 수당을 주는 게 더 적절합니다.”

김용빈 철원군농민회 회장은 “농업인들이 농산물 수확 후 받았던 판매대금을 매달 나눠주는 것을 월급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며 “오해의 소지가 많은 용어부터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농업인들은 그동안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지켜온 농업인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농업인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주장해 왔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지자체에서 농업인 월급제를 들고 나오자 이를 농민수당과 혼동하는 농업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농업인 월급제는 액면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고 농업인들 돈을 농업인들에게 주는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영농비, 생활자금 등에 대한 무이자 지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어 “차라리 농업인 월급제라는 용어를 쓰지 말고 영농자금에 대한 부담이 가는 것은 사실인 만큼 영농자금에 대한 이차보전사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소한의 생계수단으로 농민수당을 도입해야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김 회장은 “특정계층에만 혜택을 주는 정책을 지양하고, 농산물 수입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인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농민수당이야말로 농업·농촌을 지키는 진정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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