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지 시장 변화…최종 소비자 달라졌다

[농수축산신문=길경민 기자]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채소가격이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김장수요 급감으로 재고가 쌓인 무, 배추는 물론이고 양배추, 대파, 양파 등 채소가격이 전반적으로 내림세를 보였다.

배추가격은 지난해 2월 동기 대비 무려 68%나 폭락, 채소가격하락을 주도했으며, 당근 59%, 대파 54%, 양배추 64% 등 하락폭이 상상을 초월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이 산지 점검, 산지폐기, 시장격리 등의 대책을 쏟아내며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백약이 무효’처럼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이번 채소가격 폭락을 단순히 과잉생산으로만 볼 수 없는 부분이고, 이는 결국 산지대책만으로 가격하락현상을 막을 수 있느냐는 의혹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채소류 재배면적은 평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채소류 가격이 절반 이상 꺾인 데다 각종 대책을 내놓아도 가격하락현상이 3개월이나 이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 원인을 산지 이외에서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 채소와 식품의 최종 소비자가 다르다

과거 국내산 무, 배추를 원료로 김장을 담그던 업체들이 중국산으로 대체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산 무, 배추가 국내산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산 채소소비가 감소할 수 밖에 없고, 이 같은 추세는 채소가격을 전체적으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채소 소비감소는 앞으로도 정체 내지는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데다 국내산 채소시장 자체가 위축되고 있다. 물론 이번과 같이 기상상황에 의한 작황호조로 과잉이 됐고, 일정부분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으나 소비량 감소만큼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채소 수급조절이 앞으로는 더 어렵다는 말로도 풀이된다. 무, 배추는 물론이고 저장성이 있는 마늘, 양파 등도 팔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당장 농가소득에는 영향이 없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소득을 장담할 수 없는 구조로 빠져들고 있다.

더욱이 수급불균형에 의한 가격하락은 경기침체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속될 수 있다. 이는 호황이 오더라도 국내산 채소 소비위축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소비지 시장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읽어야 할 부분이다. 가정식 소비가 감소하는데 반해 식품·외식 등 대량소비처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게 현 소비지 시장의 트렌드이다. 이 같은 트렌드는 점점 가속화될 수 밖에 없다.

1~2인 가구와 고령화의 증가 현상이 뚜렷해 지고 있는 인구 동태적 변화를 보면 미뤄 짐작 할 수 있는 부분이다. 1~2인 가구는 번거로운 조리를 탈피하는 경향이 크고, 고령가구는 조리하는 것 자체가 힘들 수 있다. 이는 조리보다 HMR이나 간편식 등을 주로 찾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이어진다.

채소의 최종 소비자가 주부에서 외식업체로 바뀌고 있고, 그 틈을 수입채소가 채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선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김치업체들의 원료 구매선이 국산에서 중국산으로 바뀌고 있다”며 “이미 상당부분 중국산이 국내산 시장을 잠식했다”고 말했다.


# 생산중심의 정책은 한계가 있다

먹을 것에 대한 종류도 광범위해지고, 특히 글로벌화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과거에는 국내산 채소에 대한 국민의 충성도가 높아 생산위주의 정책이 가능했다면 이제는 소비지의 변화를 농정의 중심에 놓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먹을 것에 대한 최종 소비자는 크게 변함이 없으나 채소 구매의 최종 소비자가 다른 세상이 됐다는 것은 채소산업정책의 중심도 산지에서 소비지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채소를 먹는 소비자는 변함이 없으나 채소를 구입하는 최종 소비자가 가정단위에서 외식업체 등으로 옮겨갈수록 국내산 채소시장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근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소비시장의 트랜드를 읽지 않고, 생산중심의 농정이 지속될 경우 채소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소비지 시장의 변화를 찾아내고, 이를 데이터화해야 한다. 수퍼마켓, 음식점 등의 채소 소비동향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여기서 나타나는 변화의 흐름을 읽고 이에 맞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소비지시장의 변화에 대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대안을 마련, 시행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건강수명과 연장 등을 실현하기 위해 전개한 ‘21세기에 있어 국민건강만들기운동’이 그것이다. 특히 식생활·영양에 관해 채소 350g 이상을 섭취하는 수치목표를 설정해 향후 1인당 채소소비량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도매시장 변화에 대한 조사, 주산지 점검 및 격리, 폐기 등 산지정책만으로 채소산업 전체를 끌고 가려고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음식문화의 변화도 미리 읽어야 한다. 외식도 공유주방으로 바뀌고 있고, 심지어는 일반가정에서도 주방은 없어질 것이다. 각 가정이 공유주방으로 가서 조리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개별주방이 없어진다는 것은 채소시장의 변화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수 밖에 없다.

소비지에서 일어난 변화를 가지고 플랫폼을 만들고, 플랫폼과 국내 채소산업을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스마트 헬스케어 플랫폼, 외식문화의 새로운 플랫폼 등을 구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플랫폼에도 우리 채소산업을 연결시켜야 한다.

인간의 건강한 삶과 행복 추구를 위한 플랫폼을 채소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방안, 소비지 시장의 동태 파악 및 대책 마련 등을 통해 위기에 처한 채소산업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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