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쓰레기더미로 '흉물'…소비자도 찾지 않아
구 시장 잔류상인 120명…영업중인 소매점포는 20개 남짓
대법원 판결 따라 조속한 명도집행…시장 정상화 필요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 시장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되며 구 노량진수산시장이 폐허로 변해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27일 구 노량진수산시장 전경.

“몇 달 사이에 시장이 너무 을씨년스러워졌어. 이정도 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봄바람이 불어오던 지난 3월 27일 오후에 찾은 구 노량진수산시장은 여전히 매서운 겨울 바람 속에 남아있는 듯 했다.

이날 취재에 동행했던 이들은 구 노량진수산시장은 이제 더 이상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도심 속의 흉물이 돼가고 있다며 입을 모았다.

시장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간 이어지며 폐허로 변한 구 시장은 왜 이렇게까지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에 충분했다.

# 소비자가 찾지 않는 시장
새 시장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흥정소리를 뒤로 하고 구 시장에 진입하자 ‘웅웅’거리는 발전기의 소음이 들려왔다.

지난해 11월 구 노량진수산시장에 대한 단전·단수 조치가 이뤄진 이후 구 시장은 디젤발전기로 시장 내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폐허로 변해버린 시장에는 더 이상 소비자들이 오가지 않았고, 점포에 앉아있는 상인들은 기자의 일행이 지나가도 수산물 구매를 권유하지 않았다.

영업을 하고 있는 점포도 적었다. 수협 노량진수산에 따르면 현재 구 시장에 잔류한 상인은 총 120여명 수준인데 이날 시장에서 영업이 이뤄지고 있는 소매점포는 20개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구 시장의 중심가를 가로 질러가는 동안 구 시장을 지나는 소비자는 단 한명이었다. 아직 영업을 하고 있는 구 시장의 회식당에는 두 사람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으며, 회식당 옆으로 길고양이가 쌓여있는 폐기물 더미에서 쓰레기봉투를 뒤적이고 있었다.

회식당에서 눈을 돌리자 외부 인테리어에 유난히 신경을 쓴 것처럼 보이는 새 노량진수산시장의 전경과 곳곳에 붉은색으로 ‘철거 중’이라고 쓰여진 구 시장의 광경이 겹쳐지며 기괴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 쌓여가는 쓰레기
“지난달 말 구 시장의 쓰레기를 수거하던 업체와의 계약이 만료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온도 서서히 올라갈텐데 쓰레기가 제대로 수거되지 않을 경우 악취민원으로 이어질까 우려됩니다.”

구 시장의 상황을 설명하던 수협 노량진수산 관계자의 얼굴에는 난처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수협 노량진수산은 시장 이전 이후 구 시장에 대한 관리업무를 공식적으로 종료했다. 또한 시장 관리를 위해 구 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구 시장의 소매상인들과 갈등의 골이 깊은 상황에서 수협 노량진수산 직원들이 구 시장의 쓰레기를 직접 치울 수도 없고, 치울 것을 강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 시장에서 발생하는 민원은 오롯이 수협 노량진수산의 몫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구 시장에서 구매한 반건조 수산물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일이 발생했지만 그 민원은 수협 노량진수산 측으로 접수되기도 했다.

이 가운데 구 시장의 쓰레기는 쌓여가고 있다. 구 시장의 주요 통로와 영업중인 점포 근처를 제외하고는 쓰레기만 빼곡히 쌓여가고 있는 실정이다. 구 시장의 주 통로의 측면에 있는 작은 길목은 쓰레기로 덮여 걸어 다니는 것조차 어려웠다. 한때 많은 소비자들이 시장의 정취를 느끼고자 찾던 회식당이 있던 장소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 위생·안전 위협에도 해결방안 없어
구 시장 곳곳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비위생적인 광경들이 연출되고 있었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었다.

지난 3월 27일 서울의 한낮 기온은 16도까지 높아지고 미세먼지 농도는 ‘나쁨’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구 시장에는 12대 가량의 디젤발전기를 이용해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터라 매캐한 매연이 구 시장을 휘감고 있었다.

더불어 영업중인 대중어 점포의 뒤켠은 이미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어 언뜻 보기에도 수산물의 선도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한 조건으로 보였다.

건물의 안전성 역시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지어진 지 48년이 훌쩍 넘은 구 시장은 건물의 노후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상황이다. 특히 시장이 이전하며 구 시장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개·보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다 현대화 사업 과정에서 시장 건물의 일부를 잘라내 언제 사고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없다. 구 시장에 대한 명도집행이 상인들의 강한 물리적 저항으로 번번히 무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 시장의 소유주인 수협중앙회와 노량진수산시장 종사자들의 직·간접적인 피해도 만만치 않다. 수협은 현대화 사업이 지연되며 불필요한 비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또한 노량진수산시장 종사자와 소비자의 편익 증대를 위해서는 지난 3년여간 발견된 개선사항에 대한 시설 개선이 이뤄져야한다. 하지만 구 시장 문제로 준공승인이 나지 않은 상황이라 시설개선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수협 노량진수산 관계자는 “철거돼야하는 건물을 개·보수할 수는 없으며 구 시장은 노량진수산시장이 아닌 터라 상인들에 대한 지도나 계도를 실시할 수도 없다”며 “대법원 판결에 따라 조속히 명도를 집행, 시장을 정상화하는 것이 구 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농수축산신문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