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농업·농촌 '치유'의 공간으로 태어나다 - 네덜란드 치유농업을 중심으로 ⑥기본에 충실한 케어팜 ‘밀마스다이크’ 농장
봄부터 가을까지 야외서 각종 채소·과일농사에 참여
생산성 낮아도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 

▲ 아직 2월의 모습이지만 여름이면 온실은 더욱 풍성해 진다.

네덜란드 주재 한국대사관이 있는 도시, 그리고 우리에게는 독립운동의 역사와도 연관이 깊은 곳인 헤이그에서 남쪽으로 30분가량 내려가면 1500㎡의 온실과 2000㎡의 노지에서 농사를 짓는 밀마스다이크케어팜이 있다.

소농 위주인 네덜란드 케어팜들 중에서도 규모로 보면 작은 편이지만 케어팜을 운영하는데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농장의 다이나믹함과 일하는 사람들의 열정은 여느 큰 케어팜에 견줘 전혀 부족함이 없다.

농장에서는 시금치, 무, 상추 등 25종의 채소와 사과, 복숭아 등 10종의 과일, 그리고 각종 허브와 꽃이 재배되는데, 이는 모두 농장안의 직거래숍에서 판매된다.

하루에 6~7명 정도의 케어고객들이 오고, 농장주 피트씨를 포함한 상주직원 4명, 자원봉사자들까지 있어서 고객들은 1대 1로 돌봄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밀마스다이크케어팜의 23명 고객들은 발달장애, 청각장애, 뇌손상, 치매 등 다양한 증상을 갖고 있어서 일반적인 직장생활이 어려운 성인들이다.

고객들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외에서 각종 채소와 과일농사에 참여 할 수 있지만 겨울이면 실내작업을 주로 한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일은 바로 자전거수리다. 인구수보다 자전거 숫자가 많은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활필수품이다.

▲ 자전거수리, 판매는 꽤 괜찮은 비즈니스인데다가 고객들에게도 큰 성취감을 준다.

피트 씨는 자전거수리 정도면 장애가 있는 고객들도 함께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이웃에서 고장나거나 버려진 자전거들을 수거해와서 농장고객들과 함께 수리하고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다.

자전거수리는 곧 꽤 괜찮은 비즈니스가 돼서 지금까지 판매한 자전거만 해도 3000대나 된다. 자전거수리를 도우며 흥미를 느끼게 된 고객 한 명은 전문적인 자전거수리공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한다.

실내작업은 그 외에도 다양하다. 한 쪽 테이블에서는 네명의 사람들이 둘러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는데, 친환경에너지 활용이 활발한 네덜란드에서 수요가 많은 태양광패널을 조립하는 것이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고객들 중에는 시각장애인 행크 씨도 함께했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능숙하게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조립한 태양광패널은 인근의 공사중인 건물에 판매하고 이는 농장의 수입으로 연결된다. 다른 한쪽에서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고객이 작물용 비료봉투를 만들고 있었다.

▲ 비료를 포장중인 고객의 손놀림이 매우 능숙하다.

비료를 작은 비닐봉투에 넣어 사용설명서와 함께 막대기에 매달면 한 개가 완성되고 이는 이웃의 농장에 판매된다. 이 작업을 하는 고객의 옆자리에는 농장주 피트 씨도 앉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밀마스다이크농장에서는 일을 할 때 고객과 직원이 동등하다. 장애가 있다고 쉬운 일만 하거나 동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국내에도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농장 혹은 보호작업장은 존재하지만 경영상의 어려운점 중 하나는 그들의 업무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밀마스다이크농장은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솔직히 고객들의 생산성은 5~20% 정도밖에 안돼요. 하지만 우리는 직원과 고객 구분 없이 모두가 책임자로서 같은 일을 하고 있고, 우리의 목표는 고객들의 생산성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소중하고 보람 있게 보내게끔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항상 외치는 말이 있는데 ‘자, 해 낼 수 있어요!’ 예요. 이런 식으로 고객들을 격려하는 게 항상 효과가 있지는 않지만 장애 때문에 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하던 일을 마침내 성공하면 그게 가져오는 성취감은 어마어마하죠. 제가 고객들에게 기대하는 첫 번째는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감을 갖는 거에요. 마지막으로 생산성까지 좋을 수 있다면야 더 좋겠지만 그게 우선은 아니죠. 그 사이에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농장의 수익을 생각하면 이런 철학을 쉽게 받아 들이고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트 씨는 전체 농장수입의 60% 정도를 차지하는 안정적인 케어수입외의 나머지 수입을 최대한 키우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다.

채소와 과일 재배를 공들여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외에 자전거판매나 각종 조립작업 뿐만 아니라 인근에서 간단한 공사일에 참여한다던가, 손재주가 있는 고객은 예쁜 장식품을 만들어 농장의 직거래숍에서 판매하고 있고 농작물을 가공해 잼, 양념 등도 판매한다.

장애 때문에 하기 어렵다는 편견 없이 다양한 일에 도전함으로써 고객들은 성취감을 맛보고 농장은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피트 씨 가족은 이 땅에서 3대째 농장을 운영 중이다. 1980년 아버지로부터 농장을 구입한 피트 씨는 원래 채소를 재배하는 농부였다.

처음에 호박, 상추 등을 키우다가 파프리카 재배로 농장을 25년간 운영해 왔다. 그러던 중 2005년 아들이 뇌종양 판정을 받으면서 그의 인생에 큰 변화가 왔다.

“다행히 아들은 잘 치료받고 괜찮아졌어요. 하지만 당시에 저는 너무 혼란스러웠고 삶이란 게 얼마나 덧없는지 깨달았습니다. 네덜란드 속담에 한 대 맞으면 비로소 얼굴을 돌려 다른 쪽을 바라 볼 수 있게 된다는 말이 있어요. 저에겐 제 인생을 바꿔 놓은 사건이었죠.” 피트씨는 그동안 사회에서 받은 것을 이제는 돌려줘야 할 때라는 생각에, 곧장 농장의 온실들을 팔기로 결심했다.

마침 온실을 포함해서 전체 농장면적의 90%를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었기에 경제적인 고민 또한 덜 수 있었고, 그후 남은 10% 면적으로 지금 케어팜을 운영중인 것이다. 그는 이 결정이 더 나은 결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훨씬 더 행복해졌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본인의 주요한 업무는 바로 농장의 고객들을 즐겁게(entertain)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피트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에게서는 끊임없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농업환경을 이용해 농업인과 사회적약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케어팜의 기본 가치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하는, 기본에 충실한 모범적인 케어팜이 바로 밀마스다이크농장이 아닐까.

 

[글·사진 제공] 조예원 바흐닝언케어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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