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어팜' 치매돌봄의 성공적 대안 자리매김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 

▲ 농장입구에 들어서면 농산물숍과 티하우스가 방문객들을 맞는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노령인구가 많은 선진국에서 치매환자 돌봄은 대개 국가적인 관심사 중 하나이다. 돌봄 복지가 발달한 네덜란드에서는 이들이 요양원과 같은 시설에 가는 시점을 최대한 늦추고 집에서 일상 생활을 하면서 삶의 질을 유지하는데에 치매케어의 초점을 맞춘다.

치매라는 질환의 특성상 병의 진행속도를 늦추고 가족과 같은 돌봄인력이 고통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곧 돌봄의 핵심인데, 케어팜은 이런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 훌륭한 대안이라는 것이 그동안 농업을 성공적으로 케어영역에 접목시켜 온 네덜란드 보건계의 분위기이다.

네덜란드 비넨달시의 주택가 끝자락에 위치한 익후버(Eekhoeve)농장은 특히 치매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데이케어프로그램을 제공해서 인기가 많은 케어팜이다.

케어 전문가인 3명의 직원들이 상주하는 가운데 노인들이 머무는 넓은 거실에서는 카드나 보드게임과 같은 두뇌 자극훈련, 그림그리기와 같은 창의력 활동을 비롯한 각종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이뤄진다.

사람들은 무조건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흥미에 따라 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한쪽에는 테이블 가득 도화지를 펼쳐 놓고 수려하게 그림을 그리는 할아버지가 있고 맞은편에서는 네 다섯명의 노인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 풍경이 일반적이다.

이는 소규모 케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농장마당을 쓸거나 자전거를 타고 인근을 산책하는 등 야외활동도 쉽게 할 수 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일반 요양시설에 있는 노인보다 케어팜을 이용하는 노인이 더 많은 신체활동을 하고 더 많이 먹는다고 한다.

이에 심리적인면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내게 되는 시설에 있는 것 보다 케어팜이 더 나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도 낮시간 동안 농장에서 돌봄을 받음으로서 평소 이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주니 케어팜이 치매노인 돌봄에 적극 활용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익후버 케어팜의 주요 고객들 중에는 발달장애, 정신질환 등을 가지고 있는 성인들도 있는데 이들은 농장의 여러 가지 일에 참여한다. 농장 뒷편의 넓은 밭에서 식용으로 쓰이는 꽃을 재배하고 채소를 가꾸는 것도 그 중 한 가지다.

이를 통해 고객들은 각자 개별 텃밭공간을 할당 받아 직접 재배한 채소를 집에 가져가기도 하면서 효용감과 책임감을 배울 수도 있다. 익후버 케어팜에서는 빵과 에그노그(계란과 우유로 만든 알콜성 음료)를 직접 생산하는데 성인고객들은 이런 작업에 참여해서 생산된 에그노그병에 라벨붙이기, 병 옮기기 등도 함께 한다.

농장의 숍에서 판매할 물건들의 포장을 돕기도 한다. 또 인근 슈퍼마켓에서 얻어온 유통기한이 지난 채소들을 잘게 잘라 동물사료로 만드는 것도 이들이 하는 일에 포함된다.

▲ 케어팜 고객뿐 아니라 농장을 찾는 인근 주민들도 소가 있는 농장뒷편까지 와서 산책을 즐긴다.

원래 젖소농장이던 익후버는 2004년 케어팜으로 전환했다. 신경병을 앓으면서 거동이 불편해진 아내와 노환으로 보살핌이 필요했던 어머니를 보면서 농장주는 돌봄이 필요한 주변사람들에 관심이 생겼고 2000년대 초반 케어팜이 유행처럼 늘어나던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전환을 결정했다.

하지만 처음 케어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소득을 얻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야 했다. 어린이 생일파티 장소로 대여하기도 하고, 티하우스를 만들어 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 원래 소규모로 우유와 치즈 등을 팔던 농장의 작은숍을 확장하기로 하고 다른 농업인들과 협업해서 서로 생산하는 농산물을 교환해 판매하는 협동조합형식의 회사를 만들었다.

이는 지금 네덜란드 전역의 95개 농장이 함께 하는 큰 조직으로 성장했다. 예쁘게 꾸며진 티하우스와 농산물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일주일에 무려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익후버를 방문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아이들과 함께 동물을 구경하고 산책을 하기 위해 농장을 찾는 지역주민들도 포함된다. 익후버에는 소, 말, 양, 닭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새 등 여러 가지 동물들이 있는데 이들은 농업생산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농장에 존재한다고 매니저 헬렌 씨는 이야기 한다.

처음에는 각종 장애 및 질환이 있는 성인 고객들만 받던 익후버 케어팜이 지금과 같이 성장하게 된 계기는 2010년 치매그룹을 받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당시 비넨달시의 요양원에 있던 많은 노인들이 익후버로 옮겼다고 한다.

처음 3명이던 노인 고객은 지금 70명으로 늘어났다. 네덜란드에서 치매 등 노인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케어팜의 형태는 다양하다.

중증의 노인성질환자들만을 받아 전문인력이 의료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어팜도 있고 성인고객들과 섞여 있는 공간에서 소규모로 개인의 요구사항에 맞는 일대일 케어를 하는 곳도 있다.

또 익후버처럼 비교적 경증의 치매노인들과 다양한 활동을 통해 병의 진행을 늦추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케어팜도 있다.

▲ 치매 고객들은 원하는 활동을 선택해 참여한다. 고객 한 명이 다른 이들과 둘러 앉아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에서는 환자들이 이런 시설을 이용하는 비용을 증상의 경중에 따라, 그리고 개인의 경제적수준에 따라 차등 지원한다. 보건의료 관점에서 케어팜이라는 옵션이 치매케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국내에서도 케어팜과 치매돌봄의 결합을 이야기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이를 좀 더 적극 도입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의료적지원만을 논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때 좀 더 나은 치매케어가 가능함을 네덜란드 사례가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글·사진 조예원 바흐닝언케어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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