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적 관점서 새로운 선질개발·현장보급 필요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플라스틱 사용 저감을 위해 FRP(섬유강화플라스틱)어선 대체방안을 마련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FRP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소재의 하나로 수명이 길고 강도가 높으며 부패에도 강하다. 더불어 몰드를 활용해 제작하기 때문에 어선으로 제작시 가격이 싸고 제작이 쉬우며, 수리, 변경, 개조, 관리가 용이해 어선의 소재로 점차 많이 활용돼왔다.

실제로 1997년에는 등록된 동력어선 7만3780척 중 39.5% 수준인 2만9173척이 FRP어선이었으나 2017년에는 6만5846척의 동력어선 중 96%인 6만3244척으로 FRP어선의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FRP어선이 급격히 증가한 배경에는 정부의 정책이 있었다. 정부는 1980~1990년대에 어선의 선질개량사업을 통해 FRP어선의 건조를 장려했다. 당시에 FRP는 가볍고 튼튼하며 관리가 편한 신소재였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으로 어선의 유형별로 FRP선박의 수를 살펴보면 원양어선은 213척 중 1척이 FRP어선이며 근해어선은 2730척 중 1793척이 FRP어선이다. 연안어선은 3만9607척 중 3만8599척이 FRP 선박이며 양식장관리선은 1만8095척 중 1만7837척이 FRP로 만들어졌다.

문제는 FRP어선이 화재에 취약하고 제작과 폐선 등에 있어 환경문제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먼저 FRP는 플라스틱 소재의 한 종류로 화재에 취약하다. FRP는 유리섬유를 교차해서 쌓고 각 유리섬유사이를 수지(레진)를 이용해 접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형태로 제작돼 높은 강도를 확보할 수 있는 반면 화재발생시 인명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화재 발생시 유리섬유에는 불이 붙지 않지만 접착제로 사용된 수지에 불이 붙을 경우 수지가 녹아내리면서 유독가스를 배출한다. 또한 접착제로 사용된 수지들이 녹아내리면서 FRP에 이용된 유리섬유가 강도를 잃고 흐물거리게 되면서 어선전체가 파손, 이로 인해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제작과정부터 폐기까지 많은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FRP어선은 주로 해안에 위치한 영세한 조선소에서 주로 건조한다. FRP가루가 피부에 닿을 경우 발진과 따가움 등을 일으킬 수 있고 바다로 유입될 경우 어류가 이를 먹어 미세플라스틱처럼 축적될 수도 있다. 특히 FRP어선 건조과정에서는 표면을 다듬는 그라인딩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 경우 다량의 FRP가루가 발생한다. 이같은 문제점 때문에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FRP선박을 집진시설을 갖춘 밀폐식 시설에서 건조토록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영세한 조선소의 여건상 집진시설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

폐기 역시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FRP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소재로 폐기시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어촌에는 폐기돼야하는 FRP어선들이 제대로 폐기되지 않은 채 방치되는 경우도 많다. 또한 FRP의 폐기를 정상적으로 처리하는 것 역시 문제다. FRP소재는 소각한 후 매립하거나 파쇄후 잔골재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처리되는데 문제는 어선이라는 특성이다. 어선은 크기가 큰데다 선박 내부에 흡음과 단열, 불연성 확보를 위한 그라스울 소재로 내부가 시공돼있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폐기물처리업체에서도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현장의 전언이다.

따라서 FRP어선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한 범정부차원의 중장기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어선개발사업이 장기간 중단됐던 만큼 새로운 선질과 그에 맞는 선형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단발적인 대책이 아니라 여러 부처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FRP소재의 대체재로 손꼽히는 알루미늄을 비롯한 여러 가지 소재를 발굴하고 이에 맞는 선형개발과 조선소 확보 등을 위한 직·간접적인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알루미늄은 불법 증·개축이 어렵고 FRP에 비해 가벼우며 재활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어선건조에 소요되는 비용이 FRP에 비해 1.3배 이상 높은 터라 선질 변경시 어업인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정책적인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수산업계의 한 전문가는 “과거에는 FRP가 가볍고 저렴하고 관리하기 쉬운 혁신적인 소재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정부가 FRP어선의 문제점을 사실상 방치하면서 FRP어선의 처리문제가 대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해수부는 어선의 등록·말소만 담당하고 산자부는 소재, 환경부는 폐기문제만 담당하다보니 어선의 건조부터 폐기에 이르는 전 주기를 관리하는 업무는 공백에 놓여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특정 부처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연관부처가 함께 나서야한다”고 덧붙였다.

차세대안전복지형어선개발연구사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 엄선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정책연구실장은 “FRP어선은 건조비용이 저렴하고 관리가 편리한 장점이 있지만 화재에 취약한데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문제가 있다”며 “현재 FRP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알루미늄 역시 국내에 어선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가 턱없이 부족하고 추가적으로 확보해야하는 기술 등이 많은 만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FRP어선의 환경부담을 줄일 수 있는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한 현재 사용되고 있는 FRP어선들도 시간이 지나면 폐기에 들어가야하는 만큼 폐어선들의 적정한 처리방법 등을 모색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진송한 중소조선연구원 차세대안전복지형어선개발연구단장은 “우리나라는 FRP어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95%를 넘어서고 있는데 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어선의 선질개량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만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선질을 개발하는 동시에 소재에 맞는 선형을 개발, 이를 현장에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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