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환 국민농업포럼 공동대표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량 원조를 받던 수혜국가에서 공여국가로 지위가 바뀐 유일한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2018년 1월 식량원조협약(Food Assistance Convention)에 가입했으며, 지난해부터 국제연합(UN)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매년 5만톤의 쌀을 기아로 고통 받고 있는 나라에 원조하고 있다. 쌀 5만톤은 기아인구 약 100만명에게 반년 간 식량구호가 가능한 규모이다. 식량원조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인도주의를 실천하고 국격 제고에도 기여하는 매우 뜻깊은 일이다.
최근 정부의 대북식량지원 방침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그러나 식량원조국가의 지위를 얻은 우리나라의 형편과 북한 주민에 대한 동포애나 인도주의 정신을 감안하면 찬반논란 자체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UN 식량농업기구(FAO)와 WFP가 지난 5월 3일 발표한 ‘북한의 식량안보분과 보고서’는 현재 북한은 인구의 40%인 1010만명이 긴급 식량지원을 필요로 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136만톤의 식량지원이 필요한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생후 6개월에서 23개월 미만 어린이 중 3분의 1이 하루 최소한의 식사만 공급받고 있으며 그 결과 어린이 5명중 1명이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발육부진이 우려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즉각적이고 적절한 인도주의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막대한 양의 농축수산물의 수입과 식생활의 변화 등으로 쌀 소비량이 매년 감소해 해마다 쌀 재고 과잉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유사시를 대비해 매년 34만톤의 쌀을 공공비축물량으로 매입하고 있는데 이와 별도로 쌀 값 안정을 위해서도 2015년과 2016년, 2017년 최근 3년간 총 102만7000톤의 쌀을 시장격리 목적으로 매입하였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말 기준 122만톤의 쌀 재고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FAO의 권장재고량 70만~80만톤을 크게 상회하는 양이다. 이에 따라 쌀 재고 보관관리비용으로만 연간 6000억원 가량이 소요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70만톤의 쌀을 사료용으로 처분했다.
올해도 40만톤을 사료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세계인구의 10억명 가까이가 기아로 고통 받고 있는 현실과 함께 동족의 고통을 생각하면 참으로 억지스럽고 안타까운 일인 것이다.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고려 없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1860년대 국제적십자사가 창설된 이래 국제적인 원칙이자 상식이다. 따라서 인도적 지원은 전시에도 해야 하며, 필요한 곳이면 시기나 조건에 관계없이 또한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지난 6월 19일 우리 정부에서도 북한의 식량상황을 고려해 WFP를 통해 국내에서 생산된 2017년산 쌀 5만톤을 북한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매우 늦은 감이 있지만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조속히 대북식량지원을 직접 지원방식으로 전환하고 지원량도 대폭 확대해가야 할 것이다.
나아가 대북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영농기계와 자재의 지원 등 농업분야의 다양한 개발협력 사업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 쌀은 정치나 이념이 아니라 그자체로서 평화다. 한자(漢字) 평화(平和)는 ‘평평할 평, 벼화, 입구’ 자로 구성돼 있다. 즉 ‘쌀을 고르게 나누어 먹는 것’이 평화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