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행정 논란…변경 비용은 결국 농업인 부담으로
포장지 표시기준 변경
농업인·판매처 모두 불편
포장용기 구분은 명확히 하되
농약 음독·오남용 문제와는 별개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최근 농촌진흥청에서 농약(작물보호제) 포장지 표시기준 변경을 추진 중인 가운데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무리한 추진이 논란을 빚고 있다.

제조사뿐만 아니라 농업인, 판매관리인 등에 부담이 커지는 반면 농약 음독이나 오남용 문제에 대한 해결은 미지수라는 것이다. 게다가 농약 음독이나 오남용 문제는 농약병과 물병을 구분하는 것과 별개의 문제인 만큼 이번 농약 포장지 표시기준 변경이 단순히 국회에 보여주기 위한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글 싣는 순서>
-(상) 탁상위 연구용역
-(하) 오남용 근본대책 찾아야

# 포장지 변경비용은 농업인 부담으로

농약 포장지 표시기준 변경과 관련해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조만간 공청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포장지 변경에 대한 명분이 분명해지지 않는다면 업계의 불만의 목소리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연구용역대로 글자 크기를 크게 하고, 그림문자를 넣는 등 표기 내용을 확대하는 농약 포장지 변경이 진행될 경우 제조업계는 매년 200억원 이상의 생산비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당연하게도 증가된 생산비 증가분은 농약 가격 인상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증가한 농약 생산비는 고스란히 농업인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농업인 불편은 이뿐만이 아니다. ‘농약’이라는 내용물 표시와 안전사용, 응급처리 요령, 그림문자 등만이 강조되다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부분에 대한 표시가 축소돼 포장 디자인에 따른 제조사나 제품명 구분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는 그동안 농업인들이 편리하게 기호나 상황에 맞게 제조사나 제품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던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제품별 특·장점이 묻힐 수 있다는 것이다.

# 별지 쌓아두고 매번 찾아서 나눠줘야

판매처에도 불편이 예상된다. 현재 농약 포장 라벨은 PLS(농약허용기준강화제도) 전면시행 이후 이중라벨을 사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하지만 연구용역대로 포장지 표시기준이 변경될 경우 삼중, 사중라벨을 사용하거나 별지로 내용을 안내해야 한다. 별지를 사용하게 되면 농협, 시판 등 판매처에서는 제품별 별지를 별도로 보관해 판매 시 일일이 별지를 찾아 제공해야 한다. 별도의 별지 비치공간과 색인 마련, 매번 찾는 수고로움이 더해지는 것이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농약을 팔 때마다 별지를 찾아서 농업인에게 나눠줘야 한다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며 “농약 제품이 한 두 개도 아닌데 별지를 어디다 쌓아두고, 매번 제품별로 찾아서 일일이 나눠준다는 게 현실성이 있느냐”고 말했다.

# 국회에 보여주기 위한 임시변통?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농진청에서 농약 포장지 변경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배경에 대해 ‘단순히 국정감사를 앞두고 지난해 지적사항에 대해 보완조치를 실시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임시변통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연 초 PLS 전면시행과 관련해 제도의 안정적 연착륙에 전념했으며 이후 ‘농약 안전관리 판매기록제’ 시행과 관련한 작업이 진행됐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이 마무리되고 보니 국감이 코앞으로 다가와 부랴부랴 농약 포장지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3년 전에 농약 포장지를 변경할 때는 언제까지 시행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미리 전해지고, 의견 수렴 과정 등이 진행됐는데 이번에는 막무가내다”며 “언제부터 시행한다는 얘기도 없고, 협의는 거치고 있지만 얼마나 반영될지 미지수인 가운데 조만간 공청회를 진행한다고 하면서 날짜조차 정해주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포장지 표시변경과 관련해 최근 실시된 회의에서 업체들은 ‘250㎖ 이하 소량 포장지를 중심으로 글자크기 확대 기준 완화’ 등의 의견을 개진했지만 농진청에서는 반영여부에 대해 유보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 포장용기 구분은 필요하되 음독이나 오남용과는 별개

이에 농약 포장지 표시기준 변경을 추진하기에 앞서 추진 목적과 현실적인 제반 여건들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농약 포장지 표시기준 변경이 농약병과 물병이 헷갈릴 수 있다는 주장에서 출발한 만큼 이에 대한 구분은 보다 명확하게 하되 업계와 농업인의 불편은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 농약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한 직장인은 “분재에 벌레가 생겨 처음으로 농약병을 구입했는데 포장 디자인에서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깔끔해 놀랐다”며 “아이나 조카가 음료수로 오해해 먹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한 표시는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포장용기의 구분은 농약의 음독이나 오남용 문제와는 별개의 부분이다. 현재 농진청에서 추진 중이 농약 포장지 표시기준 변경은 포장지의 구분에서 농약 음독이나 오남용 문제로 확대돼 업계와 농업인, 판매관리인 등의 불편이 예상되고 있다. 농약의 안전사용과 관련한 부분은 굳이 포장지가 아니더라도 교육과 안전사용 안내 등으로 해결 가능한 부분이다. 또한 최근에는 스마트폰 사용 확대로 QR코드, 바코드 연동 등 보다 편리하게 사용법과 적용대상을 안내할 수 있는 기술도 고안돼 있다. 개발된 기술을 활용해 적용한다면 표시변경과 관련한 부담도 경감될 수 있다는 주장이 더해지고 있는 이유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농약 음독이나 오남용 문제는 농약 포장지에 구구절절 적고, 글자크기를 키운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며 “실제로 농약 음독이나 오남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지하고, 현실적인 고민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농진청 관계자는 “업계와 3차례의 간담회를 진행해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등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고 있다”며 “현재 제작 중인 포장지 변경 샘플이 완성 되는대로 공청회를 열고, 농업인 등의 의견도 수렴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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