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등 일부 품목 민감성 반영
관세 보호 방안 마련
보조금 축소 등 막대한 피해 우려
충분한 예산 확보 등 선행돼야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정부가 WTO(세계무역기구)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 기정사실화됨에 따라 농업계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농업인단체들은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뿐만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와의 간담회를 통해 정부가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수순을 밟게 될 것을 사실상 확인하고, 투쟁에 나설 것을 천명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지난 2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김용범 기재부 차관과의 간담회에서는 “농업계와 소통했다는 구실을 삼으려는 요식행위는 의미없다”며 회의를 무산시키기도 했다. 이어 농업계는 대외경제장관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24일에도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WTO 개도국 지위 유지를 성토하며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개도국 지위를 상실할 경우 큰 폭의 관세 인하와 보조금 축소 등으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개도국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아무런 영향분석이나 대책없이 일방적으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려 한다는 것이다.

임영호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정부에서는 도저히 WTO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에 따른 농업계의 피해에 대해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않은 채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며 “특히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는 입장을 세우기까지 가장 큰 피해자인 농업계와 소통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정부의 개도국 지위 논란과 관련해 절차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게 일고 있다. 정부가 개도국 지위 포기 방침을 수립하기까지 최대 피해가 우려되는 이해당사자인 농업계와의 소통이 미흡했으며 개도국 지위에 따른 영향평가가 선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승룡 고려대 교수는 “구체적으로 개도국 지위와 관련한 협상이 진행되는 시점도 아닌데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는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정상적인 절차로 보기 어렵다”며 “이러한 결정을 하기 전에는 이해당사자들과 우려되는 문제점과 대응책 등을 충분히 논의하는 시간을 가지며 상황 변화에 따른 전략적 대응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미리 포기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임정빈 서울대 교수도 “정부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기에 앞서 농업계를 설득할 수 있는 무언가를 들고 나온 다음에 개도국 지위 졸업 얘기를 하는 게 순서”라며 “관세 인하 문제와 관련해서는 쌀 등 일부 품목에 대해 민감성을 반영해 관세를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보조금 축소 문제는 공익형 직불과 같은 허용대상으로 전환하기 위한 충분한 예산 확보 등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정부의 행보에 농업계는 강력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강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정부는 ‘WTO 개도국 지위 유지는 농업의 최후의 보루’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려 한다”며 “농업인과 농업·농촌을 사지로 내모는 정부의 독단적인 결정이 진행된다면 전국 농민대회 등 강력한 투쟁으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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