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한국농어촌공사 환경자원부장(한국토양비료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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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헌 한국농어촌공사 환경자원부장(한국토양비료학회 부회장)

‘세계 토양의 날’인 12월 5일 즈음에 ‘인터스텔라’란 영화를 떠올려봤다. 영화에선 인류가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토지가 황폐화되고 식량부족 현상이 일어나 세계 경제가 붕괴된다. 이에 사람들은 우주로 나가 새로운 살길을 찾아 나선다. 토양학자인 내겐 영화의 도입부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농경지의 농작물은 모두 시들거나 고사했고, 메마른 토지에서 날린 흙먼지가 집안 거실에 날리는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미국에서 이러한 영화가 나온 건 이유가 있다고 본다. 미국인들은 1930년대 초 중남부 지역을 강타한 ‘더스트 볼(Dust Bowl)’이란 기후 재앙을 통해 토양관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1933년부터 4년간 가뭄이 지속됐고 식량증산 위주의 비과학적 영농으로 토양이 황폐해졌던 때다. 이때 뿌리에 수분을 간직해 토양을 지지해주는 토착 식물들이 고사했고, 노출된 표토는 강한 바람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이 때문에 생긴 '모래 폭풍'은 태양을 가릴 정도였고 사막화가 진행돼 수천세대가 집을 옮겨야 했다.

그럼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농지의 비옥도를 포함한 건전성을 확보하는 국가적인 프로그램이 약하다. 농지를 보전해야 한다는 슬로건과 최소한의 농지 면적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 있을 뿐이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농업 안팎에서 발생하는 각종 폐기물 수준의 물질이 농지를 처분장으로 삼아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선 하수처리장에서 발생한 하수 오니가 퇴비원료로 사용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고, 음식 폐기물에서 나온 폐수가 혼합된 원료를 사용한 바이오에너지 시설의 부산물이 액비라는 이름으로 농지로 유입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유기물질뿐만 석분이나 순환 골재까지도 농지에 처분하려는 조짐이 우리 사회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물론 자원을 순환시키고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찬성한다. 그러나 자원의 순환과 효율적 이용을 위해 토지, 특히 농지의 질을 떨어뜨리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에 어떤 자원이나 폐기물을 농지에 유입할 땐 그 처리 수준과 기준을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토양에 유입해서는 안 되는 물질은 배제해야 하고, 토양이 가지는 환경 용량 이내의 투입으로 회복성을 유지하는 수준에서의 관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한번 망가진 토양은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농지를 양적으로 유지하려는 정책에서 이제는 농지의 질적 확보, 다시 말해 건전한 토양을 확보하려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때이다. 질이 좋은 토양을 유지하고 더 좋게 하는 정책이 옳은 정책인지, 토양의 질을 농산물이 겨우 자라는 최저 수준까지 떨어뜨려 유지하는 정책이 옳은 정책인지, 답은 뻔하다. 질이 나쁜 토양은 좋게 하고, 좋은 토양은 유지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토양관리를 잘못한 국가는 큰 어려움을 맞이할 것이란 건 역사적 사례와 현실을 반영한 영화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토양관리는 우리의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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